남자장대높이뛰기(pole vault)의 현 세계기록은 6m14.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붑카가 1994년 세운 이후 지금까지 꿈쩍 않고 있다.

이 종목의 핵심은 역시 장대다. 기계체조 이론을 처음 세운 인물로 알려진 18세기 독일의 체육학자 요한 구츠무츠는 34세였던 1795년 나무 장대를 사용해 1m30을 넘었다. 이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제1회 올림픽(1896년)에서도 나무 장대가 쓰였는데, 우승 기록은 3m30이었다.

장대높이뛰기의 기록은 장대의 재질이 우수해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12년 탄력이 좋은 대나무 장대가 도입되면서 4m 벽이 깨졌다. 알루미늄과 유리섬유 제품이 도입된 이후에는 5m를 돌파했다. 1980년대엔 탄소 코팅 처리한 특수유리섬유로 만들어진 장대가 등장했다. 붑카는 1985년에 인간 한계로 여겨졌던 6m를 최초로 넘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이 사용하는 장대엔 재질, 두께, 길이에 대한 제한규정이 없다. 일반적으로 남자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은 길이 4m50, 지름 3.5㎝ 이상의 장대를 사용한다. 경기 당일의 컨디션이나 목표기록에 맞춰 무게와 탄성이 조금씩 다른 장대를 4~5개 준비한다. 여자 선수들의 장대는 남자용보다 조금 짧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붑카는 길이 5m20의 수퍼 장대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왜 다른 남자 선수들은 붑카처럼 긴 장대를 써서 신기록에 도전하지 않았을까? 장대의 변형량(휘어지는 정도)과 복원력(다시 펴지려는 성질)이 비례한다는 '후크의 법칙' 때문이다. 즉, 아무리 길고 탄성이 좋은 장대라 하더라도 선수가 그것을 충분히 굽힐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길고 무거운 장대는 도움닫기를 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짐이 되고 장대를 박스(pole box)에 꽂아도 앞으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뒤로 떨어지고 만다.

붑카는 달랐다. 그는 100m를 10초10에 주파하는 일류 스프린터였다. 40m 이상의 도약 거리를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다. 장대를 박스에 꽂는 순간, 수평 에너지를 고스란히 장대에 실었다. 붑카는 휘어진 장대가 강한 복원력으로 에너지를 돌려주면 새가 고공기류를 타고 치솟아 오르듯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붑카는 보통 선수가 범접할 수 없었던 '장대 마스터'였다. 그에게 5m20 길이의 장대는 삼국지의 관우가 휘둘렀던 18㎏짜리 청룡언월도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