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주위에 다섯 사람이 앉아 있다. 정면을 향해 앉아 있는 두 사람과 측면을 향해 앉은 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을 가늠하기 힘들다. 이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관람객을 등지고 앉은 나머지 두 사람의 뒷모습이다. 분홍색 옷을 입은 맨 왼쪽 인물의 어깨는 가냘프고, 까만 티셔츠를 입은 가운데 인물의 어깨는 건장하고 등은 굳건하다. 관람객은 그림 속 인물의 정직한 뒷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의 제목은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2011). 독일 작가 팀 아이텔(Eitel·40)의 작품이다.

“사람들이 왜 내 그림을 좋아하느냐고? 자신을 그 속에 대입해 자기 경험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으니까.”작품‘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앞에 선 팀 아이텔.

"그림 속 인물의 등을 바라보면 그 인물과 같은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인물의 정면을 그린 초상을 보면 그 인물과 대화를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오히려 인물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지만. 누군가와 마주 보는 것보다 그의 등 뒤에 서 있으면 오히려 그가 누군지 더 잘 알게 되는 것과도 같다."

10월 23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더 플레이스홀더스(The Placeholders)'를 갖는 팀 아이텔은 라이프치히 시각예술학교 출신의 젊은 작가들로 구성돼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뉴-라이프치히파'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이다. 20세기 말 독일의 통일과 함께 화단에 등장한 '뉴-라이프치히파'는 추상표현주의나 미디어아트 등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탄탄한 구성과 장인적 완벽함을 갖춘 구상회화를 선보이며 찰스 사치, 돈 루벨 등 세계적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디어 싸움으로 점철된 현대미술의 유행을 거슬러 우직한 '손맛'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16점의 회화가 나왔다. 그림은 대개 외롭고, 쓸쓸하고, 고요하다. 2006년 작 '베지츠(Besitz·소유)'는 짙은 어둠 속에서 왜소한 등을 잔뜩 구부리고 짐을 가득 실은 쇼핑카트를 밀고 있는 사내를 그렸다. 아이텔은 뉴욕의 거리에서 마주친 노숙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그를 변형해 화면에 옮겼다. 원래 사진의 배경은 낮이었지만, 그림 속에서는 밤으로 바꿨고, 배경을 삭제해 그림 속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그림 속 모델과 마주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행위가 '시지프스의 노동'처럼 무한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인생'이라는 것이 곧 인간의 '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경을 삭제하고, 인물도 특정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관객들이 그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으니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그리려다가 도중에 마음이 바뀌어 화면을 온통 푸른색으로 채우고, 화면 하단에는 검은 모래밭과 그 위에서 노는 아이들을 그렸다는 가로 189.9㎝, 세로 261㎝의 대작 '검은 모래'(2004)도 고독한 그림이다. 아이텔은 "관객을 우울하게 만들 의도는 없다. 다만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거나, 홀로 있는 주제가 더 창조적이고, 많은 것을 말한다고 생각할 뿐이다"라고 했다.

구(舊)서독 슈투트가르트 출신인 아이텔은 통독(統獨) 후인 199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으로 구상화 전통이 강한 옛 동독 지역의 할레와 라이프치히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를 대표하는 독일 화가 홀바인, 엘 그레코나 벨라스케스 같은 스페인 바로크 화가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 등 유럽 옛 화가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구상화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구상화는 세월이 흘러도 영원하니까. 설치미술이나 추상보다 자연스럽고, 단도직입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02) 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