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파퍼씨네 펭귄들’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펭귄들을 떠맡게 된 파퍼(짐 캐리)가 펭귄들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장면. 코미디 스타 짐 캐리는 우스꽝 스런 몸짓의 펭귄들과 절묘한 호흡을 맞추며 볼만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빚어낸다.

모처럼의 '짐 캐리 코미디'가 펭귄들을 '조연급'으로 발탁한 건 재미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크 워터스 감독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Mr. Popper's Penguins)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손짓 발짓 하나에도 내공이 느껴지는 짐 캐리의 무르익은 코믹 연기가 펭귄들의 '자연산 몸개그'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관객의 웃음샘을 꽤 건드립니다.

물론 '파퍼씨네 펭귄들'은 펭귄 소동이라는 단선적 스토리 하나로 밀고나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좌충우돌하는 펭귄들 때문에 빚어지는 코미디가 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이혼하고 혼자살던 사업가 파퍼(짐 캐리)의 삶이 펭귄들을 만나면서 겪는 의미있는 변화는 또 다른 한 축입니다.

낡은 건물들을 부수고 새 빌딩을 짓는 일을 하는 파퍼는 사업가로선 성공한 편이지만 가정은 그 반대입니다. 이혼해 혼자살고 있고 전처와 자녀들에게도 썩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어느날 그에게 세상 떠난 아버지로부터 남극 펭귄들 여섯 마리가 전달되면서 사건들이 시작됩니다. 탐험가였던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 뒤늦게 도착한 것이죠. 고민 끝에 파퍼는 결국 이 통제불능의 조류들과 기막힌 동거를 하게 됩니다.

출처='파퍼씨네 펭귄들’의 한 장면. 코미디 스타 짐 캐리는 우스꽝 스런 몸짓의 펭귄들과 절묘한 호흡을 맞추며 볼만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빚어낸다.

날지도 못하며 큰 덩치에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펭귄이란 이미 몇몇 영화에서 ‘웃음을 주는 귀여운 새’로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파퍼씨네 펭귄들’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곳에 살던 펭귄들이 가장 번화한 뉴욕에 떨어져 극과 극이 만나게 함으로써 좌충우돌 소동의 강도도 상당히 커집니다.

웃기는 장면의 거의 대부분은 짐 캐리와 펭귄들의 합작입니다. 짐 캐리는 이미 데뷔작 ‘에이스 벤추라’에서부터 동물탐정이라는 희한한 직업을 맡아 동물에 대한 친화력을 보여줬습니다. ‘파퍼씨네 펭귄’에서도 펭귄들과 절묘한 호흡을 맞춰 슬랩스틱 코미디(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이뤄진 익살극)를 빚어내며 배꼽을 잡게 합니다.

연미복의 신사 모습을 연상시키는 펭귄들도 슬랩스틱 코미디의 기본을 충실히 갖춘 듯 보입니다. 상황과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서 슬랩스틱 코미디가 시작된다면 뉴욕 맨해튼의 빌딩가에 떨어진 남극의 동물들은 그 자체가 코미디입니다. 한술 더떠 이 남극 동물들은 고향에서 하던 그대로 맨해튼 곳곳을 휘젓습니다. 꽥꽥 소리 지르고 물만 보이면 헤엄치려 하고, 매끈한 바닥에선 미끄럼을 타려고 합니다. 욕실에서 물을 틀어놓아 집안에 폭포수가 흐르게 만드는가 하면 아무데서나 마구 똥을 싸댑니다.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지고 자빠지는 등 슬랩스틱 코미디의 기본에도 충실합니다.

펭귄마다 뚜렷한 캐릭터가 있는데, 늘 다른 놈보다 동작이 서툴고 굼떠 말썽을 일으키는 ‘띨띨이’(Nimrod)는 몸개그의 1인자입니다. 인사 대신 방귀를 뀌는 ‘뿡뿡이’(Stinky)는 B급 코미디에서 꼭 빠지지 않는 지저분한 유머쪽을 담당합니다. 시끄럽게 우는 ‘꽥꽥이’(Loudy), 사람 다리를 잘 무는 ‘깨물이’(Bitey), 애정이 충만한 ‘사랑이’(Lovey), 그리고 듬직한 ‘대장’(Captain)까지 6마리가 6가지 웃음을 안깁니다.

이 펭귄들은 극중 남극의 ‘가족’과 상봉하는 대목에서조차도 몸 사리지 않고 달려갔다가 얼음판에 구르며 웃음을 줄줄 아는, 요즘 TV 유행어로 ‘예능감’이 상당히 있는 동물들입니다. 펭귄들은 주인인 파퍼씨가 중요한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행사장조차 놀이터로 삼습니다. 6마리가 이 세계적 미술관의 나선형 경사로를 미끄럼틀 삼아 집단 슬라이딩 쇼를 벌이는 장면은 펭귄 소동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출처=‘파퍼씨네 펭귄들’에서 파퍼(짐 캐리)와 전처 자녀들, 그리고 펭귄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가족 안으로 들어온 펭귄들은 이혼한 파퍼 부부의 사이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뒤뚱거리는 펭귄들의 코믹한 모습은 영화 역사의 거목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찰리 채플린입니다. 펭귄들의 몸짓과 모습은 중산모에 꼭 끼는 프록코트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뒤뚱뒤뚱 걸었던 채플린의 스텝 그대로입니다. 어쩌면 채플린이 펭귄에게서 영감을 얻어 ‘떠돌이 찰리’ 캐릭터를 완성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채플린을 떠올리며 ‘파퍼씨네 펭귄들’을 보던 나의 눈 앞에 실제로 채플린이 나타났습니다. 영화속 파퍼가 함께 살게 된 펭귄들에게 ‘황금광 시대’등 채플린의 걸작 무성영화들을 틀어주는 장면이 나온 것입니다. 채플린을 가장 빼닯은 펭귄 ‘띨띨이’는 채플린 영화만 틀어주면 꼼짝 않고 화면에 눈을 고정시킵니다. 서로 닮은꼴인 채플린과 펭귄들이 만나는 듯한 이 장면은 우습고도 인상적입니다.

펭귄 쇼를 보면서 웃던 관객은 어느 틈에 파퍼의 삶과 세계관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의 펭귄은 한번 사랑한 대상은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젠투 펭귄(Gentoo penguin)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서 배우기라도 했는지, 파퍼는 가족의 소중함도 새롭게 느끼고,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되찾아 갑니다. 물론 이런 ‘교훈적’ 스토리 자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만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런데도 ‘파퍼씨네 펭귄들’속의 뻔한 이혼가정 드라마에선 온기가 느껴집니다. 아마도 짐 캐리의 입담과 펭귄들이 빚어낸 동화적 분위기의 덕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