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는 것이 끔찍해요. 저걸 어떻게 먹나 싶고…."
경남 함안군에 사는 최동희(72·여)씨의 이야기다. 최씨는 10년 전부터 이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병원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씨에게는 선천적 장애를 가진 두 아들과 24년 전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의 남편한테서 치매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 치매 초기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남편은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고, 심지어 소변통을 이불에 뿌리기까지에 이르렀다.
최씨는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 사람이 내 이 돌볼 시간이 어디있어요"라며 "나는 아파선 안 될 사람이기에 꾹 참고 또 참아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방치해둔 이는 점점 더 고통이 심해져 끝내 밥 먹는 횟수와 식사량을 줄였고, 찬도 편하게 넘어가는 것 위주로 가려 먹게 됐다. 최씨는 "남편에게 밥을 먹인 뒤 저는 국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했죠. 그게 식사의 전부였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과 식사를 못하니 사람과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최씨는 작년부터는 밥알조차 씹을 수 없어 죽을 끓여 마셨다. 결국 체력저하와 스트레스로 인해 전신마비가 왔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경남 함안의 황의옥(76·여)씨 역시 치아우식증(충치)과 치주질환(잇몸병)으로 2년 전 치아를 전부 제거했다. 황씨는 "이가 없으니 많이 먹지도 못했어. 칼로 (김치나 반찬을) 자잘하게 썰어서 끓인 밥에 조금씩 얹어 먹고 그랬지"라며 "이러다가 영양실조 걸리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갔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양실조 걸렸다고 하더라고"라고 말했다.
우리 몸은 음식물을 섭취하여 영양분을 얻는다. 때문에 음식을 치아로 씹는 행위는 영양 공급의 출발점이 된다. 최근 미국국립보건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전체 28개(사랑니 포함 32개)의 치아 중 1개의 소수치아만 없더라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발표가 있다.
대한치과보철학회 유동기 공보이사는 "푸드 셀렉션(Food Selection)이라고 잘 씹지 못할 경우 분쇄가 어려운 음식은 피하고, 씹기 쉬운 음식만 자꾸 섭취하면서 영양 불균형이 발생한다"며 "특히 노년층으로 갈수록 치아 기능 저하로 영양분 섭취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체기능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치아가 많이 손실된 노인은 인지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본 나라의대 노조미 오카모토 교수팀은 65세 이상 노인 4000명을 대상으로 치과 검진을 한 뒤 인지기능검사(MMSE·30점 만점)를 시행했다.
그 결과 치아가 적으면 적을수록 MMSE 점수가 낮아 인지기능저하 그룹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지기능저하 그룹에서는 일부 노인성 치매 증상까지 나타났다.
노조미 교수는 "음식을 씹으면 뇌를 자극하는데, 치아가 손실되면 씹는 능력이 떨어져 뇌 기능이 쇠퇴할 수 있다"며 "치아의 씹는 기능이 좋지 않으면 뇌 세포 자극과 이에 따른 혈류가 줄어 두뇌의 노화가 촉진된다"고 말했다.
치아는 단순히 씹는 기능을 넘어 신체 및 정신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별 구강구조에 맞는 틀니를 착용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의 가난한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틀니는 언감생심이다. 이삼수(71·남)씨는 "월급 받아서 빠듯하게 사는 자식들한테 내가 300만원짜리 틀니한다고 어떻게 얘기해"라며 "부모는 말 못한단 말이야. 그러니 불편해도 참고 넘어가게 되는거지"라고 말했다.
이에 경상남도를 시작으로 울산, 전남, 전북 등 전국 지자체와 의회에서 앞다퉈 어르신들에게 틀니를 해 주겠다고 나섰다. 정부도 2012년부터 75세 이상 노인들에게 틀니 비용의 절반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중 가장 큰 성과를 보이는 곳은 전국 최초로 '어르신 틀니 보급' 사업을 시작한 경상남도이다. 경상남도는 올해 2035명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1만 3800명의 노인에게 틀니를 보급하는 사업 시행방안을 지난 4월 확정했다. 올해는 800명이 시술을 받았고 시술 중인 1000명을 포함해 2035명가량에게 혜택을 준다는 목표다.
대상자는 도내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으로, 올해 40억 7000만원 등 4년간 모두 233억 3000만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경남도청 김춘수 복지보건국장은 "현재 우리나라에 노인인구가 약 12.5%이고, 2030년이 되면 34.5%까지 늘어난다.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차원에서 어르신들에게 틀니를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소외계층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효율적인 정책을 시행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상남도의 어르신 틀니 보급 사업은 함양군에서 올해만 60명의 접수를 받았고, 540명이 지원했다. 평균 9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이다. 이후 틀니 보급 완료인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2.5%가 틀니사업에 대해 '만족한다'는 대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