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이 2011년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시인으로서는 1996년 폴란드의 비슬라와 스짐보르스카(Szymborska) 이후 15년 만의 쾌거다.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은 10년 넘도록 소설가에게 일방적 애정을 보여왔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정치적 다툼이 아니라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념의 언어보다는 자연의 언어를 사랑한 이 스웨덴 국민시인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기 이후 그의 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신비주의로 확장된다. 말똥가리처럼 높은 곳에서 신비롭게 세상을 바라보지만, 지상의 일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시인은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 출생. 기자였던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의 트란스트뢰메르는 비행기 조종사였던 외할아버지가 살던 스톡홀름 군도의 한 섬에서 여러 해 여름을 보냈다. 이때의 추억은 그의 후기 시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는 스톡홀름 대학에서 시와 종교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졸업 직후에는 심리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시인으로 데뷔한 것은 1954년 시집 '17편의 시'를 펴내면서부터. "지난 10년간 가장 찬사를 받은 시집 중 하나"라는 평가를 스웨덴 문단에서 받은 화려한 등단이었다. 시인은 20대 초반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15권의 시집을 펴냈고, 6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최근 10년 동안은 끊임없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돼왔다.
국내에도 지난 2004년 들녘출판사에서 96편의 시를 묶은 '기억이 나를 본다'(이경수 옮김)가 번역·출간됐다. '오늘의 세계 시인' 총서 중 한 권으로, 이 기획의 책임 편집은 고은 시인이 맡았다. 고은 시인은 당시 "시의 매혹과 존엄 그리고 그 뜨거운 숨결에 동행하기 위해서 현존 세계 시인들의 한 편 한 편의 진실에 다가간다. 시는 살아 있다"고 기획의 변을 말했다. 아쉽게도 본인의 수상은 아니지만, 자신이 직접 선택한 '오늘의 세계 시인'의 한 명이자 친한 스웨덴 문우(文友)의 이번 수상이 노시인에게도 남다를 것이다.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는 "이 시인이 보는 세상은 '미완의 천국'"이라고 요약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이유에서 밝힌 "반투명한 심상으로 현실에 이르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대목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낙원을 만드는 것은 결국 시인과 독자, 자연과 문명, 그리고 모든 이분법적 대립구조들 사이의 화해와 조화라고 볼 때,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번역자인 이경수 인제대 교수도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한 시인, 자연과 초월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시인"이라고 했다.
트란스트뢰메르가 미국에 소개된 것은 1960년대 작가 로버트 블라이(Bly)에 의해서였다. 이후 세계적 관심이 뒤따랐다. 출간된 시집으로는 '여정의 비밀'(1958) '미완의 천국'(1962) '창과 돌을 보라'(1966) '발틱스'(1975) 등이 있다. 한 해 평균 4~5편의 시를 쓰는 '과묵한' 시인이며, 차분하고 조용하게,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하는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때는 심리상담사로서 사회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지난 199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언어 장애와 반신 마비를 겪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측은 "시인에게 수상소식을 이미 통보했다"면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던 시인은 '정말 좋군(It was very good)"이라고 소감을 밝혔다"고 전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찾아간 기자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딸 파울라 트란스트뢰메르가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늘 독자들이었다"면서 "아버지는 담담하게 선정 소식을 받아들였고, 가족들은 크게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