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연합군은 20일 아침 리비아 시르테에서 대규모 차량이 운집하는 이상 상황을 포착했다. 시르테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고향이자 최후 거점으로,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은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주시하고 있었다.
시르테 상공을 정찰 중이던 영국 공군 차세대 전투기 토네이도는 이 상황을 곧바로 미군에 알렸다. 미군은 지중해 시칠리아에서 무인기를 출격시켜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해 차량 행렬을 공격했다. 무인기는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 외곽 공군기지에서 위성으로 통제됐다. 프랑스 주력 라팔 전투기도 폭격에 나섰다. 미군 무인기와 프랑스 전투기의 공습으로 100여대 호송 차량 중 기관총을 실은 트럭 15대가 파괴됐고 카다피 친위대 50여명이 사망했다.
나토는 공습 당시 차량 중 한 대에 카다피가 타고 있는지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했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차량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이상 상황이 카다피와 관련돼 있음을 감지하고 공습에 나선 것이다. 카다피가 급히 움직인 것은 이날 오전 시르테 총공세에 나선 시민군의 공격을 피해 도시 중심부를 탈출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를 태운 차는 호송차 100여대와 함께 시르테 중심에서 서쪽으로 3㎞ 떨어진 제2구 지역으로 달렸다.
◇영·미, 음성 인식으로 위치 파악
나토 연합군은 시민군의 시르테 공격이 본격화된 지난주부터 카다피의 위치를 포착하고 있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카다피는 최후를 맞기 며칠 전부터 무슨 이유에선지 휴대전화와 위성전화를 사용했다. 감청을 피하기 위해서는 쓰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깨뜨린 것이다. 영국 해외정보국(MI6)과 미 중앙정보국(CIA)은 음성 인식 기술을 통해 카다피의 위치를 파악했다.
미국 무인기와 프랑스 전투기의 공습이 시작되자, 카다피와 생존 친위대원은 황급히 차량에서 내려 도로 아래로 흩어져 달아났다. 카다피는 황금 권총을 지니고 몇몇 경호원과 함께 도로 밑 배수관에 몸을 숨겼지만 곧 시민군에게 발각됐다. 다리에 부상을 입은 채로 배수관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카다피는 총을 든 시민군이 다가오자 "쏘지 마, 쏘지 마" 하고 외쳤다고 한 시민군이 전했다. 시민군은 카다피를 끌어낸 뒤 그의 겨드랑이를 끼고 끌고 갔다. 시민군이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에는 시민군이 트럭 보닛에 카다피를 올려놓고 몸으로 제압하는 모습, 카다피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누군가가 "그를 살려줘, 그를 살려줘" 하고 소리치고 총성이 여러 발 울린다. 그러나 카메라 영상에서 카다피의 모습은 더 보이지 않는다.
동영상을 보면 카다피는 시민군에게 체포됐을 당시 살아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이었지만 제 발로 걸으며 시민군에게 끌려갔다. 카다피는 체포된 후 시민군에게 "나를 죽이지 마라. 내 아들을 죽이지 마라"고 말했다고 CBS는 전했다. 로이터는 카다피가 "뭐가 잘못된 거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전했다.
가디언은 카다피가 시민군을 향해 "내가 너희한테 뭘 잘못했느냐"고 말했다는 증언을 전했다. 체포 작전에 참여한 한 시민군은 "카다피의 부하 중 한 명이 공중에 총을 흔들며 항복하겠다고 소리쳤지만 나를 보자 총격을 가했다"면서 "카다피는 그때 부하들에게 총격을 그만하라고 말한 것 같다"고 했다.
◇나토군·NTC 카다피 사살 원했나
구급차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카다피의 시신 사진은 얼굴 왼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모습이다. 국가과도위원회(NTC) 마흐무드 지브릴 총리는 "카다피가 배수관에서 발견돼 트럭으로 옮겨졌고, 트럭이 출발하려는 순간에 카다피군과 NTC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면서 카다피가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카다피 시신을 검시한 의사 이브라힘 티카는 "카다피의 직접 사인은 내장을 관통한 배의 총상이며 이후 또 다른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다"고 말했다고 알아라비야 방송이 21일 보도했다.
그러나 누가 카다피의 목숨을 끊는 데 결정적인 총상을 입혔는가에 대해선 증언이 엇갈린다. 카다피 체포 작전에 참여했다는 한 시민군은 "카다피 경호원 중 한 명이 카다피에게 총을 쐈다"고 전했다. 반면 NTC의 한 관계자는 "카다피를 생포해 끌고 가는 동안 시민군이 그를 심하게 때렸고 결국 죽였다"면서 "카다피가 저항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카다피를 쐈는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국가와 NTC 측은 애초부터 카다피의 생포를 원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 18일 리비아를 전격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카다피가 생포되거나 살해되기를 원한다"고 한 말은 '카다피 사살'에 무게를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지브릴 NTC 총리는 "카다피를 죽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NTC는 반드시 생포하라는 지시도 하지 않았다. 카다피가 생포될 경우 그를 법정에 세워야 하고 이 과정에서 카다피 지지 세력이 재결집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