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에 유례없는 르네상스인으로 꼽히는 만해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문학이 6권의 전집으로 복원됐다.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63) 교수가 엮은 '한용운 문학전집'(전6권·태학사 출간)이다. 이번 전집의 가장 큰 특징은 만해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일제에 의한 강제폐간으로 중단된 '삼국지' 281회분(1939. 11.1~1940.8.11)이 최초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였다는 점. 이 시점 이후 발표된 한용운의 작품이나 저술이 확인된 바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만해의 마지막 글쓰기다. 조선일보 강제폐간과 자신의 글쓰기 운명이 겹쳤다는 점도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엔 의미심장한 대목. 만해는 당시 한시(漢詩) '신문폐간'을 발표함으로써 본지의 폐간을 애통해했고,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세상을 떠났다.

또 1908년 만해가 일본 유학 당시 불교잡지 화융지(和融誌)에 발표했던 한시 11편도 처음으로 수록됐다. 지난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세로쓰기 판본으로 '한용운전집'이 출간된 바 있지만 지금은 절판됐고, '삼국지'와 이번에 수록된 한시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만해는 한국불교의 근대화를 이끈 선승이자, 조국 독립에 앞장선 저항적 지식인이며, 우리 문학사에 누구보다도 고결한 시언어를 각인시킨 문인으로 꼽힌다. 이번 전집은 총 6권. 제1권 '님의 침묵'에서는 1926년 간행된 시집 '님의 침묵' 수록시와 한용운이 신문 잡지에 발표했던 시와 시조, 한시를 모두 실었다. 제2권과 제3권은 한용운의 장편소설 '박명(薄命)'과 '흑풍(黑風)'을 각각 수록했고, 제4권 '죽음 외'에는 유고 형태로 남았던 소설 '죽음' '철혈미인' '후회' 등이 실려 있다. 제5권이 조선일보 강제폐간과 함께 중단됐던 '삼국지'이며, 제6권 '조선독립의 書외'에는 한용운이 잡지 신문에 발표한 여러 논설과 수필을 실었다.

‘한용운 문학전집’이 6권으로 완성됐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사진 오른쪽)팀이 맺은 결실이다. 이번 전집의 특징은 만해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일제의 본지 강제폐간으로 중단됐던‘삼국지’가 최초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는 점. 위는 1940년 8월 11일 폐간일 당시에 실린 한용운의 삼국지 281회분. 삽화는 김규택 화백 작품이다.

제5권에 실린 822쪽 분량의 '삼국지'는 사실상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것. 조선일보의 데이터베이스나 영인본에는 하루치씩 나뉘어 남아있지만, 한꺼번에 책으로 묶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만해의 '삼국지'는 당시 양백화(1889~ 1938), 박태원(1909~1987)의 '삼국지'와 함께 대표적인 국역 판본의 하나로 꼽힌다. 1939년 11월 1일부터 폐간일인 1940년 8월 11일까지 매일 연재했으며, 적벽대전을 지나 형주 쟁탈전까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 분량에서 중단됐다. 당시 만해는 삼국지 연재의 변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홉 살 때 삼국지를 세 번 읽고 얻은 감명은 지금도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현대의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삼국지를 한 번씩 읽도록 한다는 것은 다만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소개한다는 좁은 범위가 아니라 실로 귀중한 한 개의 사업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니 소설이라면 의례히 속된 남녀 관계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 세상에 있어서 한결 더 그 뜻이 무겁다고 생각된다."

권 교수는 만해의 '삼국지'를 "긴장감·압축감 있는 구성과 서술이 돋보인다"고 평한 뒤 "조선일보 폐간과 자신의 글쓰기가 함께 중단되면서, 저항적 지식인 한용운의 일제에 대한 투쟁의식이 더욱 심화됐을 것"이라고 했다.

화융지에 발표된 만해의 초기 시들은 권 교수가 직접 일본 현지답사를 통해 발굴한 것이다. 주로 일본 유학 당시 고향을 생각하거나(사향·思鄕), 쓸쓸한 심경(춘몽·春夢)을 읊은 한시다. 모든 작품의 원문에는 한자음을 병기했고, 일부 난해한 어구와 인명에 대해서는 주석을 달았다. 이번 '한용운 문학전집'은 만해의 삶을 "문학의 범주 안에서 재정리했다"는 점이 특징. 전집을 엮은 권 교수는 "한용운 전집이 처음 출간된 1973년 이래 문학 분야에서 새로이 축적된 연구성과를 총망라했다"면서 "텍스트를 정비, 주석하고 해제함으로써 21세기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한용운 문학의 정본을 마련했다는 점이 의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