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게 이런 걸 왜 하라는 거야' '그냥 한 시간 놀다 오지, 뭐'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할 때, 이런 생각부터 드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대입 수시모집은 '교내 활동' 중심으로 이뤄진다. 교내 활동을 소홀히 하고서는 아무리 교외 활동 스펙이 화려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작정 교내 활동을 많이 하면 좋은 걸까?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 페이지를 늘리기 위한 활동은 쓸모가 없다. 한두 가지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학교 체험, 심화학습으로 나만의 의미 찾아라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먼저 "요즘 학생들은 '체험'이나 '활동'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동적인 견학, 관람 등을 체험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임 사정관은 "대학에서는 학생 스스로, 적극적으로 한 활동을 보고 싶어 한다. 이 활동을 왜 했는지,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앞으로의 목표와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행평가'를 잘 활용하면 좋은 비교과 활동이 돼요. 예를 들어, 과학수업에서 '○○이론'을 배웠다면,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을 해보세요. 실제 실험결과가 어땠는지, 결과가 잘못됐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에게 물어보면서 잘못된 이유를 찾아 다시 실험을 해볼 수도 있죠. 이런 것이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교과 심화학습'이에요."
학교 환경 탓에 실험이 어렵다면, 독서를 할 수도 있다. "○○이론을 배우고 더 알고 싶어서 양자물리학 책을 봤다. 그중에 ~내용이 있었는데, 대학에서 이 부분을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다"는 내용만으로도 좋은 심화학습이 된다.
김혜란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은 "학교·지역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활동을 할 여건이 안 될 수도 있다. 마지못해 활동한 경우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라"고 강조했다.
"인문계열 지원 학생인데 선생님이 시켜서 수학심화반 활동을 했다는 경우도 있어요. 원치 않은 활동이라도 수학심화반에서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 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분명 있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면 돼요.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희망전공에 맞는 전공적합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세요. 억지로 시작한 활동이지만 이런 노력이 가짜로 만든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사정관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희망전공 바뀔 수 있어… 전공 연계 활동에 집착하지 마라
흔히 '비교과활동은 희망전공과 연계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고1~2학년 때는 목표나 희망 전공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전공 연계'라는 말에 얽매여 획일적인 스펙을 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제·경영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증권사 방문, 경제경시 응시, 경제교실 체험 등을 똑같이 하는 식이다.
차정민 중앙대 입학사정관은 "고1~2학년 때는 전공이 계속 바뀔 수 있고,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 활동을 해나가면서 여러 분야에 도전하고, 자기 진로를 더 명확하게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라"고 조언했다.
고지영 한양대 입학사정관 역시 "학교 진로체험은 대개 일회성 특강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학생은 이 특강을 듣고 강연했던 변호사와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고, 변호사사무실과 법원에도 가보고, 법정 관련 책도 읽어본다. 이렇게 진로를 찾는 과정에서 학생의 열정이나 태도를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봉사활동의 경우, 주로 교외 봉사를 평가하는데, 학교와 연결된 교외 봉사라면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권영신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은 "예를 들어, '학교 동아리에서 교육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이를 계기로 ○○○기관을 알게 돼 그곳에서 교육 봉사를 꾸준히 했다'는 식으로 연결되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스펙을 '무조건 많이' 쌓는 것도 의미가 없다. 고지영 사정관은 "어떤 한 가지 실적만으로도 전공적합성, 학업능력, 봉사심, 리더십, 협동심 등을 모두 평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지원자 중 교내 수학연구반에서 활동한 사례가 있어요. 단순히 수학문제를 푸는 동아리였는데, 동아리 회원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조직해서 소외지역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교육 봉사를 하고, 동아리탐구 발표대회 등의 대회에도 참가했죠. 또 어느 학교의 경우에는 교내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돕는 학습멘토링 활동을 했는데, 이를 지방교육청과 연계해 또래 청소년 상담봉사로 활동 폭을 넓히고, 나중에는 학교에 소외지역 아이들을 돕는 공부방을 열었어요. 교내 활동이 봉사·교외 활동 스펙으로 잘 이어진 사례들입니다."
요즘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의 교사 평가 항목(교과 학습 발달 상황·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교사 추천서에 주목한다. 교사 평가 항목은 내신 성적과 더불어 학교생활 태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권영신 사정관은 "단순히 내신성적만 좋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니다. 실제 수업을 진행한 교과 담당 교사, 담임교사, 추천 교사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해 신뢰를 주는 교사추천서가 많아졌어요. 추천서는 학생과 부모가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학생부보다 더 솔직한 내용이 담기죠. 한번은 성적이 뛰어나고 비교과활동 실적이 화려한 학생이 지원했는데, 교사추천서에 '이 학생의 성적이 뛰어나지만 대개 사교육에 의한 것이고, 선행학습을 했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태도가 나빴다'고 쓰인 경우도 있었어요. 성적이나 스펙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바른 수업 태도 등 평소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