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8대 경제대국인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9일(현지시각) 한계선으로 여겨졌던 연 7.0%를 훌쩍 넘기자 국제금융시장에선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현재보다 금리가 2.5%포인트 더 올라도 국가 부채를 줄일 수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비관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국가 부채가 1조9000억유로에 달해, 유럽 정상들이 합의한 대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1조유로로 확충해도 감당키 어렵다. IMF(국제통화기금)에 중국 등 신흥국의 돈을 보태 지원하는 방안도 표류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 급등을 우려한 독일의 강한 반발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 그 충격파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에 버금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유로존 국가들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한국은행은 "주말까지 이탈리아가 긴축 개혁안을 어떻게 통과시킬지 지켜본 후 유로존 차원의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 "중장기 근본 대책이 필요"
독일에선 2조3000억유로 규모의 '유로채무상환기금'을 만들자는 구상이 제기됐다. 1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총리 경제자문기구인 '5현자(賢者)위원회'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이 기금 신설을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주요 유로국의 공동 보증으로 만들어진 기금이 GDP 대비 60%를 초과하는 국가 부채 부분을 떠안는 식이다. 대신 회원국들은 GDP 대비 재정적자를 0.5% 아래로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헌법상 명기하고, 협약을 어길 시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 당한다. 위원회는 "독일까지 내년에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독일이 지금까지 통화 동맹의 주요 수혜자였기 때문에 유로를 수호하는 게 전체 유럽뿐 아니라 독일의 이익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씨티그룹은 "독일·프랑스나 그리스·포르투갈 등 위기국이 유로화를 포기하는 건 답이 아니고 결국 독일이 양보해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이 유로화 출범 덕택에 통화 가치가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낮아지면서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덕을 봤으니 현재와 같은 위기 국면에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다.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는 최근 2년간 독일이 국채 금리 하락으로 90억유로(14조원)의 이득을 본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안전자산인 독일 채권에 투자가 몰리면서 독일 국채 금리가 떨어졌고, 그만큼 정부의 자금 조달 비용이 줄었다는 것이다.
◇독일, 회원국 재정 긴축 압박
그러나 독일은 아직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9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국제 사회는 유럽을 기다리지 않는다. 유럽에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해 채무 위기국들의 재정개혁을 압박했다.
독일은 EU 차원에서 회원국들의 부실 재정에 칼을 대려고 하고 있다. 10일 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재정상태를 감독하고 필요할 때, 제재까지 가할 수 있는 이른바 '재정감독 차르(황제)'를 신설하기로 하고 올리 렌 EU 경제·통화 담당 집행위원에게 이 역할을 맡겼다. 독일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7개 EU 회원국은 예산안을 자국 의회에 보내기 전에 EU 집행위에 먼저 제출하고 집행위는 이를 점검,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을 경우 해당 회원국에 개선 조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만약 집행위가 요구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제재가 필요할 때엔 렌 집행위원이 단독으로 결정하고 이에 대한 다른 집행위원들의 이의는 서면으로만 전달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부 회원국은 "EU 집행위 관료들이 재정 위기를 빌미로 회원국의 주권을 침해하려 한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