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전쟁·반인륜 범죄를 처단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차기 검찰수장직을 아프리카 여성이 맡게 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오는 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릴 ICC 협약비준국 118개국 회의에서 내년 임기가 끝나는 아르헨티나 출신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59) 수석검사의 후임으로 서(西)아프리카 감비아공화국 출신인 파투 벤수다(50·사진) 차석검사가 단독후보로 추대될 것이라고 1일 보도했다. 벤수다 검사는 2002년 창설된 ICC의 제2대 수장이자 첫 여성 수석검사가 된다.

벤수다는 감비아의 첫 여성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르완다대학살 관련 국제형사재판에 참여하다 2004년부터 ICC에 합류했다. 그는 감비아에서 자라 나이지리아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토종 아프리카인'이다. 감비아계 모로코인 사업가와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벤수다는 이번에 영국·캐나다·탄자니아 출신 남성 법조인들과 최종 경합을 벌였지만 국제형사 분야에서 경륜과 전문성, 친화력 등을 인정받아 자연스레 단독후보가 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간 ICC의 수사·기소 사례가 모두 우간다·콩고·수단·케냐·리비아 등 아프리카에 집중되면서 "서구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재단하는 것은 조직의 치명적 결함"이란 지적이 제기돼 왔던 것이 벤수다 추대 쪽으로 무게를 실어줬다. 차기 수장은 아프리카에서 나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포린폴리시는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전쟁 중 집단 성(性)범죄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ICC는 관련 조직을 신설할 예정이다. 여성인 벤수다는 이 이슈를 이끌 적임자로도 떠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잦은 돌출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전임 오캄포 수석검사와 달리 벤수다는 침착한 성격이라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설득과 업무 추진 등을 매끄럽게 처리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물러서곤 했던 ICC에 적극적인 활약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ICC는 아프가니스탄·조지아·온두라스·콜롬비아·이스라엘 가자 지구의 민간인 학살이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전쟁범죄에 정의의 칼을 빼려다가도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의 파워게임에 밀리곤 했다"면서 벤수다 수석검사가 지휘하는 ICC는 앞으로 행동반경을 넓혀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