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초의 사나이'가 돌아왔다.
13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코리안탑팀체육관. 오후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선수들이 하동진 감독 앞에 일렬로 섰다. 전날 밤 하 감독과 함께 귀국한 정찬성(24)도 열중쉬어 자세로 맨 끝에 자리 잡았다.
"다들 찬성이 경기 중계 봤지? 너희도 노력하면 UFC(미국에 있는 세계 최대의 종합격투기 단체) 무대에 설 수 있다. 찬성이 승리로 약간 분위기가 들뜬 것 같은데, 초심을 잃지 말자. 알겠나?"
하 감독의 당부에 선수들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우렁차게 외쳤다. 그러고 나선 곧바로 모두 정찬성에게 몰려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형, 진짜 대단했어요." "자식, 난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잘했어 정말."
그는 11일(한국시각)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UFC대회 페더급(66㎏ 이하) 경기에서 7초 만에 마크 호미닉(캐나다)을 때려눕혔다. UFC 역대 최단시간 KO승 기록과 동률이었다.
◇"KO 순간, 아직도 생생"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볼을 꼬집어도 봤어요. 아직도 오른 주먹 스트레이트가 호미닉의 얼굴에 들어가는 순간은 느린 화면처럼 생생합니다."
정찬성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심판이 너무 빨리 KO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정찬성은 "호미닉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는 걸 봤다"며 "심판이 안 말렸으면 정말 실신했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 이후 정찬성의 휴대폰은 불이 났다고 한다. 캐나다 현지에선 외국 기자들의 취재 공세가 쏟아졌다. 정찬성의 이름은 하루 종일 검색 순위 1위를 지켰다. 정찬성은 "축하 문자가 쏟아졌다"며 "학교 다닐 때 나를 자주 때리던 녀석들도 '경기 잘 봤다'고 연락이 왔더라"고 했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정찬성은 중학교 2학년 때 경기도 남양주로 이사했다. 작고 빼빼 말랐던 정찬성은 종종 시비에 말려들곤 했다. "자꾸 촌놈이라고 놀렸어요. 제가 자존심이 세서 자주 싸웠는데, 늘 졌지요. 체격이 상대가 안 됐어요. 하하."
◇버스비도 없던 시절
보다 못한 이모가 정찬성을 끌고 합기도장에 갔다. 그전까지 운동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던 정찬성은 어느새 격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냥, 격투기가 좋았어요. 그전까지는 뭔가에 빠졌던 적이 없었거든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코리안탑팀에 찾아갔죠. 레슬링을 배우려고요."
격투기를 반대하던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순 없었다. 정찬성은 훈련을 마치고 나면 오후 9~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4시까지 부업을 했다. PC방, 노래방, 호프집….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체육관에서 새우잠을 잤고, 배가 고플 땐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다행히 체육관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곽대규가 정찬성에게 자취방에 서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정찬성은 곽대규에 대해 "배고팠던 시절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줬던 친구"라며 "대규한테 버스비를 빌렸던 적도 많았다"고 했다. 배고팠던 시절은 정찬성을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코리안 좀비(그의 별명)'로 키웠다.
◇대전료보다 많은 상금
11일 정찬성의 경기는 '녹아웃(KO) 오브 더 나이트'로 선정됐다. 상금은 7만5000달러(약 8600만원)로 정찬성의 1경기 대전료(6000달러)보다 12배 넘게 많았다.
정찬성은 유독 상금을 잘 타는 선수다. 올해 3월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전(戰)에선 '서브미션 오브 더 나이트'(상금 5만5000달러)를 받았고, 지난해 가르시아와의 첫 번째 대결에선 비록 난타전 끝에 패했지만, 경기가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로 선정돼 상금 6만5000달러를 손에 넣었다. 지금껏 미국에서 상금으로 번 돈만 19만5000달러(약 2억2400만원)에 달한다.
정찬성은 상금으로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고, 새집도 구할 예정이다. 정찬성은 일본에서 대전료 300만원을 받던 시절에도 200만원을 부모님에게 드렸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이 이젠 '다음 경기가 언제냐'고 먼저 묻고, 경기 중계도 꼬박꼬박 챙겨보신다"고 흐뭇해했다.
정찬성의 최종 목표는 UFC 페더급 챔피언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꼭 한국에 챔피언 벨트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저를 보며 꿈을 키울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