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평행우주이론'의 다른 세상을 생각해본다. 평행우주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에 대한 우주가 각각 존재한다. 이편에서 괴롭게 살아가는 이라도 저편에서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래빗 홀'(Rabbit Hole)의 제목은 이 평행우주들을 연결하는 구멍을 가리킨다.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상실감에 빠져 래빗홀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헤드윅'(2000)에서 주연과 각본, 연출을 맡았고, '숏버스'(2006)로 제한 상영등급 논란을 일으켰던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받은 데이비드 린제이의 동명 원작 연극을 각색했다.

베카(니콜 키드먼)과 하우위(아론 에크하트)는 8개월 전 교통사고로 아들 대니를 잃은 중산층 부부다. 베카는 아이 물건을 치우고 하우위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본다. 베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집에만 있고 하우위는 자식 잃은 부모들의 모임에 나간다. 이들의 일상은 평온한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부풀어오른 풍선과 같이 팽팽하다.

영화는 소중한 걸 잃은 사람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지 않지만 감상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상처는 조용히 한 겹씩 쌓이다가 베카가 실수로 아이의 동영상을 지우면서 한번에 폭발한다. "나도 아프고 힘들다"고 서로 소리지르는 이들의 싸움은 상실에 뒤따른 깊은 슬픔과 연민을 묵직한 떨림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 떨림은 동정과 같은 얄팍한 감정보다는 가슴을 주먹으로 천천히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가깝다. 우아한 표정으로 평온한 일상을 지내다 한순간에 감정이 허물어지는 어머니 역할을 맡은 니콜 키드먼의 연기가 이런 감정의 몰입에 큰 몫을 한다.

베카는 자신의 아이를 죽게 한 소년 제이슨(마일즈 텔러)을 만나고 그에게서 '래빗홀'이란 만화를 건네받는다. 래빗홀을 본 뒤 베카는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가 뭘 깨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우주'의 존재는 그에게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22일 개봉. 등급 미정.

[이것이 포인트]

#대사
"언제부터인가 견딜 만해져 결국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작은 조약돌만하게 되지. 그건 아들 대신 네게 주어진 무엇, 그냥 평생 가슴에 품고 가야 할 것이야."(아들을 잃었던 베카의 어머니가 같은 처지의 딸에게 하는 말)

#장면
베카가 잠들면 하우위는 혼자 거실에서 아이가 뛰노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본다.

#해외평
"가슴을 때리는 특별한 경험."(타임)

#이런 분들 보세요
소중한 것을 잃고 과거 잘못을 곱씹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