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 저만치 등대 같은 불빛이 보였다. 깜깜한 밤에도 청솔기숙학원본원(경기 이천시 신둔면 용면리)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다. 지난 17일, 다시 한 번 수능에 도전하기로 한 학생들이 이곳에 모였다. 세상과 동떨어진 외딴섬에서 자신과 분투하는 재수선행반 학생들의 24시를 들여다봤다.
◇일주일 내내 과외받는 효과
오전 6시 20분, 기상 음악이 흘러나오자 학생들이 삼삼오오 기숙사를 빠져나와 강의동 앞에 섰다. 건강상태 등 생활지도교사의 조례를 받고 간단한 체조로 하루를 연다. 아침 식사는 1시간가량, 양치질을 마치고 강의실로 향한다.
강의실에서의 하루는 담임의 조례로 시작된다. 조례를 통해 학생들은 하루 학습계획을 점검하고 자신의 목표를 되새긴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매일 30분간 언어·외국어 듣기 연습이나 영어 단어 시험을 치는데 이날은 시험이 있었다. 통과를 못 한다고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단어를 확인할 정도로 열심이다. 김모(18)양은 "공부만 하기로 작정한 학생들과 있으니 혼자 공부할 때보다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매 교시 50분 강의가 끝나고 오후 12시 30분부터는 점심시간. 일찍 식사를 마친 학생은 자칫 부족할 수 있는 운동량을 이 시간에 채운다. 실내체육관도 이용할 수 있는데 강의동 지하 1층에는 탁구장과 농구장, 헬스장이 마련돼 있다. 운동장 옆 실내체육관은 현재 바닥을 단풍나무 소재 마루로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청솔학원은 올해부터 체대입시반을 운영하기 위해 체육수업이 가능한 체육관 시설을 만들고 있다.
정규수업은 6교시까지. 오후 3시 30분부터는 학생 5명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원하는 강사와 함께 부족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클리닉 수업'이 진행된다. 올 한 해 과외수업을 받았던 박모(18)양은 "일반 학원에서는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서 과외를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세번뿐이라 부족했다. 여기서는 일주일 내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현자와의 대화로 언어영역·논술까지 다잡아
저녁식사 후 학생들은 강의실이나 독서실에서 교과별 숙제를 하거나 수업내용을 예·복습하며 자기주도학습을 진행했다. 질문반에서는 당직 강사가 학생을 기다린다. 청솔학원의 질문 당직시스템 때문이다. 각 교과 강사가 정규 수업 이후에도 남아 1:1로 학생의 질문을 받거나 특강을 하며 언제 어디서든 학생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이날 외국어 영역 주정훈 강사는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준동사 부분을 강의했다.
오후 9시 50분, 식당에서 만든 샌드위치와 음료가 강의실로 도착했다. 정해진 자습은 10시까지지만 원하는 학생은 공부를 더 할 수 있다. 나머지 학생은 가벼운 마음으로 '현자와의 대화'에 참여한다. 현자와의 대화는 언어영역 강사가 추천하는 짧은 글을 읽는 프로그램으로 언어독해 능력을 키우고, 논술도 대비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날의 글은 김동리의 '바위'. 줄거리 등 글의 이해를 돕는 부분과 생각해볼 문제로 구성돼 있어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았다.
자정이 가까이 오면 그제야 학생들은 기숙사로 발길을 옮긴다. 기숙사는 강의동에서 약 30m 떨어져 있다. 김모(18)군은 "일반 학원에 다닐 때면 통학시간을 뺏기는 것은 물론, 오가는 길에 PC방 등 유혹에 넘어갔다. 기숙학원에서는 길에 버리는 시간이 전혀 없다"고 했다. 오후 11시 50분 시작된 생활지도교사의 점호가 끝나자 취침등을 제외하고 기숙동 모든 불이 꺼졌다.
◇모의고사로 실전감각 유지
주중 스케줄은 토요일까지 진행되고 일요일은 별도의 스케줄로 운영된다. 오전에는 언어, 외국어, 수리 중 두 영역의 모의고사를 실시한다. 가령 이번 주 언어와 외국어를 봤으면 다음 주는 언어와 수리, 그다음 주는 수리와 외국어를 본다. 생활지도교사가 채점하고 학생 생활기록표에 결과를 기록하면, 학과 담임은 이를 바탕으로 피드백을 준다. 오후에는 종교 활동 및 자유시간이며, 학부모 면회도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은 바비큐 파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일주일 내내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이는 기숙학원을 찾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박모(18)양은 "의지가 부족해 집에서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으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학원을 찾은 이모(17)군도 "혼자 공부하기 어려웠지만, 학원 공부 스케줄에 맞춰 공부 습관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어느 학생의 책상에는 이런 메모가 있었다. '웃어넘기자. 괜찮아, 잘될 거야' 자신과의 힘든 싸움 속에서도 웃으려 노력하는 이들의 장래가 밝아 보이는 건, 매일 그들의 꿈이 자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