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으로 환경운동의 새 장을 연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김은령 옮김|에코리브르|400쪽|1만8000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 번역본이 다시 나왔다. 발간 50주년 기념이다. 살충제의 생태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내용인데, DDT에 가장 많은 양을 할애했다. 20세기 후반 40년간 환경 분야의 시대정신으로 군림했다고 봐도 좋을 책이다.

'침묵의 봄'은 인공 화학물질이 갖는 ①내성(耐性)과 ②농축(濃縮)의 두 현상을 부각시켜 설명했다. 해충에 살충제를 뿌리면 다 죽는 게 아니라 극히 일부라도 살아남아 빈 생태공간을 채워버린다. 돌연변이로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게 된 놈들이다. 이것들을 제거하려고 더 독성이 강한 살충제를 뿌려 보지만 해충과의 전쟁에서 인간은 '짧은 승리' 뒤에 '궁극적 패배'를 할 수밖에 없다. 카슨은 한국전 때 군인들에게 5% 농도의 DDT를 뿌렸는데 이(蝨)가 되레 많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소개하고 있다.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a href=http://www.yes24.com/24/goods/6140639?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span><a href=http://www.yes24.com/home/openinside/viewer0.asp?code=614063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pre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

DDT 같은 유기염소계 물질은 좀체 분해되지 않아 살충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런 물질은 먹이사슬을 타고 올라가면서 농축된다는 점이다. 1949년부터 캘리포니아 어느 호수에서 각다귀 퇴치를 위해 DDT의 사촌쯤 되는 DDD를 최대 0.02ppm 농도로 뿌렸는데 농병아리들이 떼죽음했다. 조사해봤더니 호수의 플랑크톤에선 5ppm,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작은 물고기에서 40~300ppm,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농병아리와 메기에선 각각 1600ppm과 2500ppm이 검출됐다.

'침묵의 봄'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자연은 원래 아름답고 순수하고 조화로운 것인데 사람이 손을 대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환경운동 주류는 이런 '오염 패러다임'이 지배해왔다. 폴 에를리히의 '인구폭탄(Population Bomb·1968)',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1972)' 같은 저작들이 카슨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세계관'을 이어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론(論)도 인간 욕망을 억제해야 지구가 산다는 흐름의 관점을 공유한다.

2000년대 들어 '침묵의 봄'에 다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우파 싱크탱크인 기업경쟁연구소(CEI)가 개설한 '카슨은 틀렸다(http://rachelwaswrong.org)'라는 사이트는 첫 페이지에 '오늘날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말라리아에 의해 치명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바로 한 사람이 잘못된 경고(false alarm)를 울렸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레이첼 카슨이다'라는 글을 싣고 있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What the world needs is DDT'라는 글에서 '카슨의 쓰레기 과학(junk science)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적의 살충제로 각광받다가‘침묵의 봄’출간 이후 퇴출됐던 DDT는 21세기 들어 복권(復權)되는 분위기이다. /corbis

스리랑카는 1948년만 해도 말라리아 환자가 연간 280만명 발생했다. 그러던 것이 DDT가 뿌려지면서 1962~64년엔 발병 건수가 31~150명에 그쳤다. 그러나 1964년 DDT를 금지시킨 후 환자가 1968년 100만명, 1969년 250만명으로 늘었다. 그래서 어떤 블로그는 카슨이 나치보다도 많은 사람을 죽인 셈이라며 카슨을 히틀러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녹색 테러(green terror)'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농약이 없다면 작물의 3분의 1은 해충이 먹어 치울 것이다.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농지를 더 늘려야 한다. 산을 깎아낼 수밖에 없다. 전국 구석구석 경사도가 낮은 산지는 상당부분 논밭으로 개간돼야 한다. 생태환경은 망가지고 말 것이다. 농약은 생태를 파괴하는 측면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선 생태를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카슨에 대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선지자였다'는 평가와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설익은 과학자였다'는 시각이 함께 존재한다. 인간의 간섭이 생태 위기를 초래한다는 관점과 과학기술에 의존해야 생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관점 사이엔 넘기 힘든 장벽이 있어 보인다. 과학문명을 한계(limit)로 인식할 것인가 가능성(possibility)으로 파악할 것인가. 지금의 환경운동이 부닥쳐 있는 딜레마에도 시사점을 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