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근대적 의미의 상설극장은 1900년대 초 구한말 설립된 양명사다. 지금의 황금동 옛 제일극장 건너편 만년장 목욕탕 옆 샛길 건너에 있었다. 김인수·정인준 등에 의해 설립됐다.

그 뒤 현대식 극장은 일본인이 세웠다. 1908년 황금동 파레스호텔과 그 옆 옛 남국 카바레 자리에 일본인이 가설극장을 세워 운영했는데, 그 자리에 '광주좌'라는 현대식 극장이 들어섰다. 일본인 후지가와가 1924년 4월 착공, 1925년 11월 개관했다. 지금도 광주에서 오랜 산 사람들은 광주좌에 대한 희미한 추억이 있다. 그땐 1층보다 2층이 더 상석이었다. 입장료가 1층은 20전, 2층은 25전이었다. 관람석에는 의자가 없어 다다미에 앉아서 봤다. 통로가 될만한 곳에는 판자를 깔아 신을 신고 다니지만, 관람석은 벗고 들어갔다.

1931년 11월 고사를 지내다 화재로 불탄 광주좌는 이후 경영주가 바뀌면서 제국관, 공화극장, 동방극장으로 이름이 변했다. 지금의 무등극장은 1967년 이 광주좌 터에 목조형태로 들어섰다. 현재 건물은 1974년 화재 이후에 완공됐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은 1935년 설립된 광주극장. 광주의 조선인 최초 극장이다. 대흥정미소, 여객자동차회사 등으로 돈을 번 최선진이 1935년 10월 개관했다. 당시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돼 시민 경축행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극장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결국, 극장이 들어선 터만 놓고 비교하면 무등극장 터가 광주극장 터보다 광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극장이 운영된 곳이다. 이 같은 내용은 광주 향토사 연구가 박선홍씨가 1994년 발행한 '광주1백년 2권'에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24일 무등극장(현 무등시네마)이 문을 닫았다. 100년 가까이 광주 도심 충장로를 지켜온 무등극장이 이날 마지막 상영을 했다. 이로써 광주에서 개봉영화를 볼 수 있는 향토극장은 모두 사라졌다. 고급 서비스와 복합상영관으로 무장한 대기업 영화관의 공세에 밀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명석(36·금호동)씨는 "학창시설 극장하면 무등극장이었다"며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많은 추억을 쌓았는데, 문을 닫아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무등극장은 영업부진으로 지난해 11월 8개 가운데 4개 관에 대해 폐업신고하고 이날 나머지 4개 관의 상영도 중단했다. 건물 지하에는 레스토랑이, 1층에는 의류점, 커피숍, 편의점 등이 이미 들어섰다. 극장 측은 2~5층 가운데 일부를 임대해 업종을 바꾸고 인디밴드 등 무대 구하기가 어려운 예술인을 위한 공연장도 만들겠다고 한다.

무등극장은 극장들이 복합상영관에 밀려 하나 둘 문을 닫거나 대기업에 넘어가는 동안 꿋꿋이 영업을 해왔다. 마지막까지 향토극장의 명맥을 잇게 된 광주극장은 예술영화 등을 재상영만 한 지 오래. '향토 개봉관'은 무등극장이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