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요? 현대건설에서 연락이 왔다고요?"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5층 서울시 일자리플러스센터. 전화를 받은 상담사 송지영(34)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왼손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이날 송씨는 상담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3번째 탈북자 취업 알선에 성공했다.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연락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안 된다는 전화만 받았는데…."

송씨는 서울 시민에게 일자리 전문상담을 해주는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단 한 명뿐인 탈북자 전문 취업 상담원이다. 이 센터 유일한 탈북자 출신 직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1월부터 탈북자들을 위해 일자리를 주선하고 있다. 말쑥한 외모와 표준어 말투에 그가 탈북자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저도 이곳 사람이 돼버렸네요. 호호."

지난 2004년 고향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넌 송씨는 북한에서 선망의 대상인 방송원(아나운서)이었다. 함경북도 탄광 지역의 2급 기업소(3000명 이상~5000명 미만 회사)에서 "당의 구호를 높이 받들고 오늘도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전투원 여러분!"을 매일 외쳤던 그였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 결핵을 얻은 뒤 남한으로 탈북한 오빠와 연락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보안소(경찰)가 가족을 간첩으로 몰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탈출을 결심했다. 여동생과 둘이 탈북길에 올랐고, 5개월 동안 강제북송의 위협 끝에 한국에 입국했다.

"적응하는 게 힘들었지만, 어렵게 이곳 땅을 밟은 이상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탈북자 일자리 상담사인 송지영씨가 서울시 일자리상담센터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결국 남한에 온 지 2년 만에 중앙대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했다. 문화를 빨리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전직(前職)을 살리기 위해 적합하다 생각했다. 그는 이때 대학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복지 수업도 들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남한사회다"라던 북의 교육이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의 사회복지에 투신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일자리플러스센터 공고를 본 송씨는 "이것이 내 천직"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었고, 탈북자 상담원이 됐다.

송씨는 당 정책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던 북한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했다. 탈북자 한 명을 취업시키기 위해 수십 통씩 전화하는 것은 기본. 출장도 수시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입국한 지 얼마 안 된 '적응기' 탈북자를 고용한 기업에 일정액의 지원금을 준다.

하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기업의 편견은 여전히 강하다. "보통 한국사람이라면 쉬울 텐데, 탈북자라고 하면 자격증이 많고 경력이 있어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탈북자'라는 말만 나오면 전화를 뚝 끊어버리기도 하고요."

송씨는 "탈북자들이 처음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더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그의 소망은 모든 탈북자를 다 취업시켜주는 것이다. "강한 북한 여자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던 송씨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지만 계속 이일을 해 나중에 통일될 때 저의 경험과 능력을 전수해주고 싶어요. 평생 이 일에 투신하고 싶습니다. 또 제 꿈이 공무원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