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사용하지 않아요. 학교 선생님이 사용하는 것도 한 번도 못 봤어요."

"다들 사물함에 넣어뒀다가 학기 말에 뜯지도 않은 CD(컴팩트 디스크)를 쓰레기통에 버려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학생들의 책가방 무게를 덜어주겠다'며 도입한 'e-교과서'가 학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현실을 모르고 내놓은 탁상행정, 예산낭비 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교과서'는 교과부가 기존 교과서를 CD로 제작, 보급한 교과서로, 종이 교과서와 함께 배부된다. 지난해부터 초·중·고 전 학년 3개 교과(국·영·수)의 e-교과서가 보급되고 있다. 교과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3170만부, 올해는 1710만부의 e-교과서가 공급됐다. 첫해인 지난해 투입된 예산이 380억원에 달한다.

e-교과서의 존재를 잘 모르는 학생이 허다할 뿐 아니라 사용해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서울 배화여고 3학년 학생 1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에도 못 미치는 31명만이 'e-교과서를 안다'고 대답했고, 사용해 본 학생은 15명에 불과했다. 사용해 본 학생들도 대부분 '호기심에 한 번 틀어봤다'는 정도다. 이모(19)양은 "교과서 내용 그대로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보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애들은 종이 교과서도 보지 않는데 컴퓨터를 켜서 따로 봐야 하는 e-교과서를 볼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상명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60명 중 51명이 'e-교과서를 알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용한다'는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초·중학교는 더 심했다. 서울 창서초등학교 2학년 17명 중 e-교과서를 아는 학생은 2명에 불과했고, 강남구 신사동의 한 학원에서 중학교 5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e-교과서를 아는 사람은 7명, 이 중 '한 번이라도 사용해봤다'는 학생은 2명이 전부였다. 강남구 신사동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이모(16)군은 "나와 친구들은 CD를 조각내 퍼즐놀이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e-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된 가장 큰 이유로 부실한 내용을 꼽는다. 고교 1학년 최모(17)양은 "교과서 내용 그대로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교 3학년인 김모(19)양도 "좋은 인터넷 강의와 교재가 넘쳐나는데 교과서와 똑같은 내용인 e-교과서를 볼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e-교과서, 디지털교과서

2011년부터 도입된 CD 형태로 된 교과서로 종이교과서와 함께 보급된다. 초·중·고교 국·영·수 과목에 도입됐다. e-교과서는 디지털교과서로 가는 중간단계라고 교육 당국은 설명한다. 디지털교과서는 교과서 내용뿐 아니라 참고서, 문제집, 용어사전 등의 내용을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등 멀티미디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재로 2013년부터 시범 도입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