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추락에는 국가부채 말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낮은 성장률이다."
세계 7위 경제 대국 이탈리아는 과도한 공공부채로 유럽을 재정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탈리아 위기의 원인이 무분별한 복지 정책에 있다고 보고 긴축 재정이라는 처방전을 내밀었다. 하지만 빈사상태의 이탈리아 경제를 수술 중인 마리오 몬티(69) 총리의 진단은 달랐다. 그는 "지난 10년간 이탈리아는 끔찍한 저성장에 시달려야 했다"며 "경제 성장이 없으면 다른 정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공공부채보다 저성장이 더 큰 위협이라는 것이다.
오는 26~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방한하는 몬티 총리를 22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났다. 몬티 총리는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과 대학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이자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진 이유는?
"이탈리아는 공공부채를 제외하면 부동산 버블이나 개인 채무, 은행 시스템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2008년)로 인한 경기침체가 결정타였다. 공공부채보다 저성장이 더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이다."
이탈리아는 리먼 사태 직후인 2009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5.1%를 기록하며 추락했으며, 지난해 GDP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경제성장이 왜 중요한가?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려 젊은이들과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이탈리아는 무분별한 복지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복지 정책 원칙은?
"재정 건전성, 사회적 형평성, 그리고 역시 경제 성장이다. 이 세 기둥이 없으면 복지 정책은 무너진다."
―경제성장을 위한 계획은?
"서비스 분야의 경쟁 시스템을 강화할 생각이다. 전문직 서비스뿐 아니라 금융, 소매업 분야를 개혁하고 공공부문도 현대화할 것이다."
몬티 총리는 취임 후 긴축재정안과 노동법 개정 등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평상시라면 모두 국민에게 외면받을 비(非)인기 정책들이다. 하지만 지난달 말 취임 100일 즈음한 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지지율은 60%에 육박했다.
―취임 초 학자 출신 총리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비결은?
"우리의 문제점, 해야 할 일에 대해 국민과 대화했다. 그것도 아주 솔직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정책들이 당신, 당신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파업 등 저항도 만만찮다. 어떻게 대응하는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이익 집단은 반발하게 돼 있다. 주요 정당들이 나의 개혁 정책을 지지한다는 것도 큰 힘이다."
몬티의 개혁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도 지지를 얻고 있다. 긴축 재정안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몬티의 개혁으로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7%를 웃돌며 투기 등급 수준으로 치솟았던 이탈리아 국채(10년 만기) 금리는 지금 5% 아래로 떨어졌다.
―향후 이탈리아의 가장 큰 과제는?
"이탈리아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정 적자와 높은 공공부채,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국채금리가 하락한 만큼, 희망이 보인다."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기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 안보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 핵확산 방지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 중인 한국에서 회의가 열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6자 회담이 조속히 열려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마리오 몬티 총리는
롬바르디아 출신으로 밀라노 보코니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의 가르침을 받았다. 1994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역내시장과 금융서비스, 관세, 조세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1999년 로마노 프로디 총리 정부하에서 EU의 경쟁담당 집행위원으로 지명돼 2004년까지 근무했다. 학자이자 EU 관료로서 이력을 쌓아 이탈리아 정계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있는 깨끗한 정치인이란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