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독립문초등학교의 점심시간. 남학생 15명이 학교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직사각형 공간을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길이 22m, 폭 9m의 이 '인라인스케이트장'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햇빛을 보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남학생들에게 밀려난 여학생 4명은 건물 로비에서 배드민턴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다. 1957년 개교할 때는 소규모 운동장이 있었지만, 그마저 2000년 학생들이 늘어나 건물을 증축하면서 사라져버렸다.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축구를 하던 윤태영군(5학년)은 "축구공을 마음껏 뻥뻥 차보는 게 소원"이라며 "뛰고 싶은데 제대로 뛸 데가 없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이처럼 운동장이 아예 없는 곳은 서울에 3곳 더 있다. 모두 2005년 이후 개교했다. 도심에 주택과 건물이 늘어나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자, 교과부가 지역의 여건에 따라 운동장을 기준 규모 이상 확보하지 않아도 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설립·운영 규정'을 1997년 개정하면서 '운동장 없는 학교'들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체력은 약해지고 있는데 학교 운동장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운동장이 아예 없는 학교가 서울 4곳, 경기 3곳 등 12곳으로 늘었고, 60여곳은 운동장 넓이가 1000㎡(약 300평)에도 못 미친다. 논 한 마지기보다 조금 넓은 크기다.

8일 본지가 교육과학기술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5년간 고교생 1인당 운동장 면적은 2007년 13.0㎡에서 2008년 12.6㎡, 2009년 12.0㎡, 2010년 11.8㎡로 매년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12.3㎡로 2010년보다 0.5㎡ 늘었다. 하지만 학생 수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2년 만에 2만2000명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운동장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운동장이 없는 서울 종로구 독립문초등학교 학생들이 5일 오후 건물 옥상에서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1957년 설립 당시엔 소규모 운동장이 있었는데 2000년 건물을 증축하면서 아예 운동장이 없어져 옥상과 강당, 인라인 스케이트장 등에서 체육을 한다.

이렇게 운동장이 아주 좁거나 없는 학교들은 학교 건물의 옥상이나 체육관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내에서는 뜀틀이나 매트 운동 같이 간단한 활동은 할 수 있지만, 달리기나 축구 등을 하기 어렵다. 독립문초 이학신 교장은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에너지를 발산하며 쑥쑥 성장해야 하는데 실내에서 햇빛도 못 보고 제한적인 활동만 하니까 보기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운동장이 없는 학교 학생들은 운동장이 있는 학생들보다 운동량이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운동장이 아예 없는 학교 ▲운동장은 없지만 대체 공간이 있는 학교 ▲운동장이 있는 고층학교 ▲운동장이 있는 저층학교 각각 3개교씩 모두 12개교 5학년생 722명을 대상으로 운동 시간을 조사했다. 그 결과, 운동장이 없고 대체 공간도 없는 학교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하루 평균 운동 시간이 최대 30분 정도 적었다.

서울교대 체육교육과 엄우섭 교수는 "운동장 공간을 먼저 확보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여유 공간이 없으면 운동장부터 줄여나가고 있다"며 "학생들의 지(知)·덕(德)·체(體) 교육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학교가 적정 규모의 운동장을 반드시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