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기획취재부 차장

점잖은 60대 신사가 식당에 갔다가 종업원에게 면박을 당했다. 별생각 없이 "아줌마, 반찬 좀 더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종업원이 대뜸 "아줌마 아니에요!" 하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그 신사는 "아줌마가 아줌마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니 몹시 무안하더라"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식당 종업원을 부르는 방법이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아줌마를 아줌마라 부르면 싫어하니까 아가씨라고 하라는 노하우를 배운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가씨라고 해도 싫어한단다. 여자 선후배들에게 물어보니, '아가씨'란 호칭이 특정 직업군(群)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 싫어하는 것 같다는 대답이다.

아줌마를 아줌마라 부르지 못하고 아가씨를 아가씨라 부르지 못하니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래서 나온 게 '사장님'이다. 이 호칭에는 반감을 비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종업원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저 사장님 아니에요"라고 답하기도 하지만 말투는 부드럽다. 이 방법은 영어권에서도 통한다. 서양의 식당에서 남자 종업원을 "서(Sir)!"라고 부르면 모든 종업원이 동시에 뒤돌아본다. 그러니 '사장님'이 안 통하면 '선생님'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과공(過恭)이므로 예(禮)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아줌마와 아가씨의 시대가 가고 '언니'의 시대가 도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성 전용 여성명사가 영 입에 붙지 않아 마뜩잖았다. 특히 회식 자리의 좌장(座長)인 중년 말호봉의 선배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종업원에게 연신 "언니!" 하는 것이 영 듣기 어색했던 것이다. 1980년대엔 대학에서 모든 여학생이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는데, 그 호칭보다 더 듣기 거북했다. 어쨌든 무슨 연유에서인지 '언니' 호칭도 식당에서 뜸해졌다.

요즘 그 대신 등장한 게 '이모'다. 특히 대학생들은 거의 전부 '이모'라는 호칭을 쓴다. 결코 고모나 숙모가 아니다. 딸만 일곱인 외가에 추석날 모인 조카들처럼 이모들을 찾는다. 그 학생들이 졸업해 직장에 와서도 이모를 부른다. 밥상 앞에서 한참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후배가 "이모―!" 하고 소리 지르면, 대학 때 MT 가서 김치찌개 안주 놓고 어설픈 충정(衷情)으로 우국(憂國)하던 때가 생각난다. 요즘 홍콩의 짝퉁 제품 가게 앞을 지나면 흑인 호객꾼이 한국 여자 관광객들에게 '아줌마·아가씨·언니·이모'를 골고루 부른다고 하니, 이 호칭들이 '세계적 추세'가 되는 형국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작년 말 한국여성민우회가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지 공모한 결과 심사에서 1등을 차지한 호칭이 '차림사'였다. '밥과 반찬을 차려주는 분'이라는 뜻이라는데, 과연 김밥집에서 호텔 식당까지 종업원을 '차림사'라고 부를 날이 올지는 의문이다. '차림사' 외의 후보로는 '두레손' '맛지기' '조양사'가 있었는데, 입에 붙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식당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느냐"고 물으니, '이모'처럼 가족에게 쓰는 대명사가 33%, '아줌마'가 26%였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뭐라고 부를 것이냐가 무어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채선당 사건'의 시작도 '아줌마'라는 호칭이었다. 당시 쌍방 폭행사건의 한쪽이었던 손님이 종업원을 아줌마라고 부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남자 종업원은 대충 '아저씨'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확인차 20대 아르바이트생부터 60대 주인까지 남자들을 일부러 '아저씨'라고 불러봤으나 별 사단(事端)이 나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식당에서 종업원을 소리쳐 부를 필요가 없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서비스 교육이 잘돼 있는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이 늘 손님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다. 눈을 마주치며 손만 살짝 들어도 다가와서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테이블을 주시하기는커녕, 사장님·아줌마·아가씨·언니·이모 모두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기에 생겨난 것이 테이블 위 벨이다. 그런데 이 벨에도 내성(耐性)이 생겨, 아무리 눌러봐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차악책(次惡策)으로 차라리 '여기요'가 나을지도 모른다. 영어권에서는 종업원을 부를 때 '익스큐즈 미(Excuse me)'라 하고, 일본에서는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라고 한다. 뜻은 둘 다 '실례합니다'이지만, 누군가를 부를 때는 '여기요'로 의역(意譯)하는 게 맞을 법도 하다. '여기요'도 어색하면, 그저 손을 들고 종업원이 봐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모'는 아니다. 그건 너무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