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회 산업부장

작년 초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이후 '기름값 전쟁'은 시작됐고, 1년이 지났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도, 어쩐지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싼 기름값'은 여전한데 해결방안은 도대체가 오리무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기름값은 리터당 1825원 선에서 최근 2020원대(보통휘발유 평균가)로 200원 가까이 올랐다. 화난 국민들은 이제 "정부 정책 자체를 못 믿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당초 비싼 기름값의 몰매는 정유업계를 향했고, 정유업계가 항복하면 해결될 줄 알았다. "내가 공인회계사인데, 장부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가격 거품을 잡겠다"는 작년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발언을 국민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국민들은 '비싼 기름값이 곧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장관이 바뀌어도 달라진 것은 없다. 홍석우 현 장관도 "업계 유통과정을 손대면 기름값을 잡을 수 있다"는 기존 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 조직이 총동원됐는데도 결과가 신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우선 정부가 시장과 현실에 반(反)한 정책만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정유사 장부를 수개월 동안 샅샅이 들여다보고도 거품가격 혐의 하나 못 잡았고, "시중보다 100원 싸게 팔겠다"고 내놓은 알뜰주유소는 '일반주유소보다 더 비싼 주유소'라고 손가락질까지 받고 있다. 유류세 등이 기름값의 37%(경유)~45%(휘발유)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가를 일부나마 낮춰 봐야 소비자들이 "기름값 참 싸졌네" 하고 체감하기에는 당초부터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말이 안 먹힌 다른 이유는 정부 역시 고유가의 수혜자이면서 정유업계만 비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작년 한 해 기름값이 뛰면서 정부와 정유업계 두 집단만 이득을 봤다. 작년도 업계 정유부문(국내) 영업이익은 3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1년 전(1조9500억원)보다 1조원가량 이윤이 늘었다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작년에 정부의 유류세 수입 역시 1조원가량 늘었다. 최근 소비자시민모임은 "정부가 작년 한 해 유류세를 9779억원이나 더 걷었다"면서 "정부가 소비자 부담을 외면하고 있다"고 시정을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유류세를 정작 에너지 분야에 쓰지 않고, 80% 이상을 도로 건설 등에 쓰는 바람에 운전자 호주머니 돈을 정부와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 이행에 쓴다는 비난마저 나오고 있다.

기름값 대책은 수혜자가 챙긴 이윤으로 피해자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는 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히 기름값 상승의 수혜자이면서도 그동안 눈감고 정유업계만 질타했던 정부가 서민들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방안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든 소비자들을 구제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유류세를 무작정 내리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기름값이 올라도 법인카드로 고급휘발유 넣기에 주저함이 없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데도 굳이 자가용을 고집하는 여유층들까지 도와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소형 트럭이나 버스를 몰고 비닐하우스나 근해어업에 의존하는 생계형 소비자들에 대해서만큼은 좀 더 실질적으로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을 찾고, 즉시 해결에 나섰으면 한다. 업계는 작년부터 생계형 자영업자들에 대한 갖가지 지원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젠 정부가 기름값 상승의 피해자인 서민들에게 정부 몫을 최대한 돌려주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이는 민간 정유사들의 지원방안과 맞물린다면 고유가 상황에서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