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여의도공원보다 네 배 넓은 도나우(Donau)공원이 있다. 공원 호숫가의 한인문화회관 앞 오솔길을 걷다 보면 독일어로 쓰인 초록색 표지판이 나온다. 'Franziska Donner Rhee Weg(프란체스카 도너 리의 길)'.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고(故)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결혼, 한국 최초의 영부인이 된 프란체스카 여사의 이름을 딴 길이다.

재(在)오스트리아한인연합회(이하 재오한인회) 측은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지난 3일 한인문화회관을 개관했다"며 "개관과 함께 회관 앞 오솔길에 프란체스카 여사 이름을 붙이는 행사를 가졌다"고 6일 밝혔다. 오스트리아에서 사람 이름을 도로명에 쓰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재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제공

프란체스카 여사는 1900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 인절스도르프(Inzersdorf)읍(지금은 빈에 편입)에서 실업가 루돌프 도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93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회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만나 결혼했다. 25살 연상의 남편을 따라 광복 직후 귀화했고, 1948년 영부인이 됐다. 한국명은 이금순, 혹은 이부란. 이 대통령이 직접 붙여줬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70) 여사는 "국제결혼이 드물 때라 여사가 당시 많은 차별을 받았다"며 "사람들이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착각했고, 여사라는 말 대신 '댁'이라는 표현을 써 '호주댁'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1957년 경북 영주 부석사를 찾은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기둥을 껴안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1965년 하와이에서 이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슬하에 자녀가 없었던 여사는 1970년 국내로 돌아와 양자 이인수(81·전 명지대 교수) 박사 내외와 함께 살았다. 처음으로 남편에게 선물받았던 예복을 40년간 아껴 입고 며느리에게 물려줄 정도로 검소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1992년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살던 이화장(梨花莊)에서 92세로 눈을 감았다.

'프란체스카 도너 리의 길'이 생긴 건 여사가 작고한 지 꼭 20년 만의 일이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건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한국대사관 백환기(58) 공사다. 백 전 공사는 "2012년은 1892년 조선왕조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맺은 지 120년이 되는 해"라며 "프란체스카 여사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인 만큼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친근한 '사돈'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3일 11시(현지시각) 도나우공원에서 열린 한인문화회관 개관식과 도로 명명식에는 하인츠 피셔(Heinz Fischer·74) 오스트리아 대통령 등 현지 정부관계자 80여명과 현지 교민 400여명이 참석했다. 박종범 재오한인회장은 "조만간 한인문화회관에 프란체스카 여사를 기념하는 홀(Hall)을 조성할 것"이라며 "초대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양국 우호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