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당원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김을래(47·사진) 전 부지부장은 9일 "진보당 내의 대리투표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항상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며 "나는 이번에 대리투표하지 않았지만 다른 동료 당원들의 표는 다수 대리투표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도장공장 옥상의 높이 70m짜리 굴뚝 위에 올라가 40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사람이다. 그때 불법점거 혐의로 6개월간 실형을 살았던 골수 노동운동가다. 2010년 쌍용차에서 해고당한 후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현재는 경기 평택시의 작은 식품업체 주방에서 일한다. 1만원인 당비는 파업과 해고 이후 저소득 근로자 할인을 받아 5000원씩 내왔다.
김씨는 "도당위원장을 뽑는다든가 해서 당내 선거가 있을 때 투표를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도당·시당 간부한테서 전화가 왔다"며 "투표 안 했던데 누구누구를 찍으라고 한다든가, 아니면 아예 대신 투표해 줄 테니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받은 온라인투표용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상당수 노동자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면서 인증번호가 찍힌 문자메시지를 보내줬다"며 "그렇게 보내주고 나면 누구한테 투표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총선 전 비례대표 경선 때도 전화를 받았다. 나는 남이 대신 투표한다는 것이 꺼림칙해서 온라인 인증번호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며 "하지만 주변 동료 중엔 알려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엔 안 했지만 나도 예전에 두어 번 대리투표하게 인증번호 알려준 적이 있었다"고도 했다.
김 전 부지부장은 이날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당내 문제를 잘 알 리가 없잖은가"라며 "그저 자기들 권력 잡는 데 이용해 왔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김 씨는 "당내 계파니 그런 사정도 잘 모르고 해서 심각하게 생각 안 했다. 노조원들은 출근해야 하고 먹고살기 바쁘니까 그러려니 했다."
많은 근로자들은 총선 후 문제가 불거지고서야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노조 활동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 다들 분개하면서 탈당하자고 했다. 지금 노동운동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당원들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며 "민노당 시절부터 8년간 당비를 내왔는데 그동안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탈당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노동자들이라 당권파니 비주류니 그런 것은 잘 몰랐지만, '대리투표가 없었다'는 (진보당 장악세력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한때 김씨의 쌍용차 동료였던 박모(52)씨도 전화통화에서 "방송 뉴스에서 (진보당 장악세력이) 대리투표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 치밀었다"며 "이번에 내 표도 대리투표 됐는데, 그동안 해온 게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지 정말 나쁜 ×들이란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쯤 함께 노조 활동을 하던 동료의 권유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는 "당시 영향력 있던 노조 지도부 중엔 '당원 가입하면 편한 일을 주겠다'고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평택은 노조 힘이 꽤 셌기 때문에 취업을 위해 당원이 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최근 탈당하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직접 서울 대방동 당사까지 찾아가야 탈당계를 접수해 준다고 해서 아직 못 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