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조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 마크 저커버그와 결혼한 중국계 미국인 프리실라 챈을 두고 사람들은 ‘신데렐라’니 ‘행운의 여신’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하지만 저커버그에게 ‘심플한 루비 결혼반지’를 받기 이전부터 그녀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불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27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 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프리실라의 아버지 데니스 챈(47)은 중국계 베트남인으로 1970년대 난민 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스탠다드는 이에 대해 “홍콩에서 난민 보호소 생활을 하다 겨우 미국에 정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아버지는 ‘아시아 소수 난민’으로 분류돼 1975년 4월에서 1979년 11월 사이 사회보장 번호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데니스는 미국 보스턴에서 ‘테이스트 오브 아시아’라는 식당을 열고는 그의 아내와 함께 하루 18시간을 꼬박 일했다. 때문에 프리실라를 비롯해 일레인과 미셸 두 여동생은 프리실라의 할머니가 대부분 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난 프리실라는 그야말로 ‘뭐든지 열심히 하는’ 여성으로 자라났다.
보스턴 근처 퀸시 하이스쿨 재학 당시 프리실라의 재능은 이미 빛났다. 무척이나 결단력 있었고, 자신의 목표와 자기가 할 일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당시 과학 교사였던 피터 스완슨은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첫인상을 이렇게 회상했다. “학교에 입학한 첫해였어요. 겨우 13세밖에 안된 그녀가 저에게 다가오더니 ‘선생님, 하버드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는 게 아니겠어요? 전 놀랄 수밖에 없었죠. 제 평생 13세짜리가 와서 그런 질문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녀는 이미 그때부터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죠.”
프리실라는 공부에 매진했고, 결국 반에서 1등으로 졸업했다. 스완슨씨는 지난해 팰러앨토에 있는 저커버그 저택을 찾았을 때 이야기도 들려줬다.
“프리실라가 저커버그에게 절 소개시켜줬어요. 그때 저커버그가 웃으며 이러더군요. ‘위대한 남성 뒤에는 항상 위대한 여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프리실라가 저커버그와 결혼해서 얼마나 운이 좋은 지에 대해 떠드는지 몰라도, 저커버그는 알았어요. 그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프리실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정말 제대로 이뤄낸 그 궁극의 표상이었죠.”
챈은 지난 2003년 말 저커버그를 학교의 한 파티에서 만났다. 화장실을 가려고 줄을 서다 만난 둘은 이내 사랑에 빠진 걸로 알려져있지만 챈의 저커버그에 대한 첫인상은 그렇게 ‘환상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프리실라는 과거 저커버그에 대해 ‘뭔가 이상한 괴짜 공부벌레(nerdy) 같다’고 회상한 바 있다.
저커버그를 만나기로 한 챈은 저커버그에게도 정신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 의대 소아과를 졸업한 그녀는 학업 활동을 하면서 저커버그에게 사회 공헌 활동을 하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최근 선보인 장기기증 프로그램 역시 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저커버그는 챈 덕분에 아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중국어도 배우고 베트남과 중국 여행도 다녀왔다.
데일리 메일은 “그녀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또한 그녀와 저커버그 둘 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춘 행운아들이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중국의 트위터격인 웨이보에선 과거 중국 상하이 여행을 온 저커버그 부부가 중국 CCTV 다큐멘터리에 우연히 포착된 장면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 경찰’에 관한 다큐였는데, 길을 걷던 저커버그의 모습이 그대로 삽입돼, 의도치 않게 ‘카메오 출연’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멋쩍은 듯 환하게 웃는 저커버그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겨 웃음을 준다. 네티즌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카메오’ ‘화면발 제대로 받는 저커버그’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