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밤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응급실. 급체로 온 어린이, 술집에서 다투다 다쳐 한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40대, 링거를 맞고 있는 70대 노인 등 응급 환자 40여명으로 북적댔다.
하지만 오후 10시 30분쯤 머리가 3㎝ 정도 찢어진 김모(51)씨가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업무가 잠시 마비됐다. 길거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가 119에 실려온 김씨는 들어서자마자 의사를 향해 "빨리 나와서 나 좀 치료해"라고 소리를 마구 질렀다. 그러나 막상 치료가 시작되자 김씨는 "야! 난 돈 내야 해? 나 돈 없으니 집에 갈 거야" 하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응급실 밖으로 나가려는 김씨를 잡으려고 의사와 보안 요원들이 뛰어와 몸싸움이 시작됐다. 바로 옆 유아 병상에서는 두 살배기 아기 환자가 고열로 사경을 헤맸다. 30대 초반의 아기 부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김씨를 멍하게 쳐다봤다. 다른 환자 가족은 "뭐 이런 사람이 있느냐. 어떻게 응급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고 말했다.
주폭(酒暴)이 국가 응급 시스템에도 엄청난 손실을 끼치고 있다. 단국대 의과대 '응급실 폭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응급실 폭력의 51.3%가 술에 취한 사람 때문에 발생했다. 정신이상이나 약물중독 등 나머지 원인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치다. 본지가 지난 2일과 3일 이틀간 수도권 지역 대형 병원 11곳의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의사와 간호사 110명을 대상으로 긴급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 한 달간 응급실에서 술 취한 사람의 폭언·난동을 목격한 사람은 103명(93.6%)이었다. 의료진 대부분이 '응급실 주폭'을 봤단 얘기다. 자신이 직접 폭행을 당했다는 의료진도 19명(17.3%)이었다.
응급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 응급실로 데려오는 구급차 임무를 방해하는 주범도 취객이다. 소방방재청 통계에 따르면 술에 취한 사람 때문에 발생한 환자 이송 지연 등 구급 활동 장애 사례가 1년 평균 3만727건 발생한다. 하루 84건이다.
삼성서울병원 심민섭 응급의학과 교수는 "주말 밤마다 실려오는 응급 외상 환자 평균 60명 가운데 20여명은 술 때문에 들어오는 환자"라고 말했다.
입력 2012.06.04.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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