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재정위기를 겪는 세계 각국이 재정 적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부가세를 인상하고 있다.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던 흐름에 최근에는 일본도 합류하고 있다.
◆ 스페인, 사활 건 서비스업 부가세 인상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마르타 페르난데스 쿠라스 예산 차관은 "정부 재원을 확보하고 공공부문 적자를 메우기 위해 감세나 면세를 받고 있던 부문의 부가세율을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스페인 경제지 엘 파이스는 전했다.
익명의 재무부 관계자는 이번 부가세 인상안에 따라 "일반 부가세율 18%보다 낮은 4~8% 부가세율을 적용받는 품목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현재 스페인에서 4%의 부가세율을 적용받는 품목은 책, 신문, 식료품 등이 있다. 8%의 부가세율은 호텔 숙박요금, 여행상품, 영화나 공연 관람료, 교통 등의 품목에 적용된다.
스페인 경제지 엑스판시온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스페인 정부가 호텔과 문화ㆍ요식업 등 서비스업 분야의 부가세율을 올리기로 한 것은 그만큼 스페인의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제조업이 빈약한 스페인 특성상 서비스업 분야의 부가세 인상안이 실패할 경우, 내수 소비가 더 위축될 수도 있음에도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해 부가세 인상안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OECD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스페인 내 서비스업 비중은 6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탈리아, 영국도 재원 마련 위해 부가세 인상 카드 꺼내
이탈리아와 영국도 부족한 국고를 채우는 방법으로 부가세 인상안을 선택했다.
1조9000억유로(약 2750조원)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떠안은 이탈리아는 지난해 9월17일 부가가치세를 현행 20%에서 21%로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재정지출이 거둬들이는 세수보다 많아지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 조치를 시행하지 않으면 국채 매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부가세 인상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해 3개월간 7억유로(약 1조원)을 추가로 거뒀고, 올해는 43억유로(약 6조2000억원)를 더 거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영국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가세를 인상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앞두고 모자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부가세율을 올렸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해 1월부터 이달 말 개최되는 올림픽을 앞두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부가세를 2.5% 인상했다. 지난 4월에는 그동안 부가세 적용을 받지 않았던 핫도그와 파이 등 길거리 음식에도 20%의 부가세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올림픽 유치 당시 개최 비용으로 50억달러(약 5조6600억원)을 예상했지만, 실제 소모 비용이 처음보다 3배 더 늘어난 150억달러(약 17조원)로 늘어나면서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도 소비세 인상으로 180조원 더 걷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소비세 인상에 나섰다. 부가가치세는 소비세에 포함된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 재정부채 문제를 하루빨리 문제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인 분열에도 소비세 인상안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지난 26일 중의원을 통과한 소비세 인상 법안은 6주 정도의 참의원 심의 절차를 거쳐 8월 중 처리가 끝날 예정이다.
이 법안이 의결될 경우 현행 5%인 일본 내 소비세율은 2014년 4월 8%, 2015년 10월 10%로 인상된다. 일본 정부는 이 인상분으로 걷은 연간 약 12조5000억엔(약 180조원)을 사회보장 재원으로 쓸 예정이다.
일본은 현재 연금·의료 등 사회보장분야 지출액이 17조엔(약 244조원)에 달하지만 세수는 7조엔(약 100조원)에 그쳐 약 10조엔(약 143조원) 정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부가세 인상이 세수 증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바클레이즈캐피탈의 파비오 포이스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부가세율을 인상하면 투자자들에게 재정 문제를 개선하려 한다는 확신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내수 소비 저하와 소득 불평등 심화로 경제성장에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마크 밀러 이코노미스트는 "재정 적자 목표치를 달성하고 주변 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부가세 인상안과 같은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겠지만 이번 정책으로 민간 소비도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FT)에 따르면 금융권 전문가는 "추가 세수 확보도 중요하지만 재정 적자 감축에 더욱 핵심적인 요소는 각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라며 "각국 재무장관들은 세제 합리화를 통해 조세기반을 확대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2012.07.0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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