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꿈이라 불리는 '기술사(技術士)'는 기능사·산업기사·기사 등의 단계로 이뤄진 국가 공인 기술자격의 최고 등급을 뜻한다. 해당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지식과 응용 능력을 갖춰야 하고, 기사 자격을 취득한 뒤 4년의 현장 실무 경력이 있어야만 기술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지원 자격을 갖춘 엔지니어들만 응시할 수 있지만 합격률은 5~6%에 불과하다. 국내에는 22개 분야 89개 종목에서 4만여 명의 기술사가 활동하고 있다. 분야별 기술사 수는 450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건축전기설비·소방·정보통신 등 3개 분야의 자격을 함께 갖고 있는 기술사는 국내에 단 한명이다. 주인공은 전기·기계설비·소방·정보통신 감리업체인 '나로이엔씨' 위명희(43·여) 대표다. 위씨는 지난 2010년 업체를 설립해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엔지니어 분야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평범한 주부로 기사자격 획득
위씨는 전남 장흥 출신이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집안은 가난했다. 그러나 고3 때 학교로 파견나온 서울의 인테리어 회사 직원으로부터 인테리어 분야 국비지원 혜택에 관해 들은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고교를 졸업한 직후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 대방역에 있는 인테리어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다. 혼자 힘으로 학원을 다니기 위해 위씨는 인천 시외버스터미널 매표원, 구두재단일을 해야 했다. 두 다리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인테리어업체에 취업할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버텼다. 그렇게 1년간의 국비지원 과정을 이수했다. 그러나 막상 과정을 마쳤지만 여자가 인테리어 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위씨는 애써 배운 인테리어 분야가 아닌 전기·기계설계 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4년을 일한 그는 25살 때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평범한 주부로 3년을 보냈다.
위씨는 "집에서 아기를 보고 살림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직장생활의 경험을 그냥 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교 졸업 학력이 전부였지만 전기기계설비 분야에서 4년 넘게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당분야 기사 자격 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서울 사당동 집에서 영등포 학원까지 매일 오가며, 하루 5~6시간씩 공부에 매달렸고 1년 만에 전기와 소방기사 두 분야의 기사 자격을 모두 획득했다. 그리고 3년이 넘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관련 설계회사에 취업했다.
◇더 나은 삶 위해 기술사 도전
전기·소방 등 2개 분야 기사 자격증을 따고 직장생활도 다시 하게 됐지만, 빠듯한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두 아이를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던 위씨는 그 어렵다는 기술사 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일단 시작만 하면 반은 이뤄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며 "고졸학력이 전부였지만 기술사 중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어 자신감을 가졌다"고 했다.
지난 1999년 건축전기설비 기술사 시험 준비를 시작한 그는 하루 평균 6시간, 시험 직전 1~2달은 하루 12시간씩 공부에 매달렸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의자에 오래 앉아있다보니 목은 뻣뻣해지고, 어깨 통증도 심해졌다. 좁은 공간에 오래 있으면서 우울증 증세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10번 가까이 시험에 낙방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03년 마침내 기술사 자격을 얻게 됐다.
위씨는 "계속 시험에 낙방하면서도 혼자 힘으로 기사 자격증 2개를 땄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 번도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술사 합격과 함께 설계 감리업체인 '벽산엔지니어링'에 당당히 취업했고, 연봉 역시 이전의 3~4배가 넘는 수준으로 올랐다. 위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2004년 학점은행제로 학사학위를 받은 뒤 2006년 한양대에서 전기공학 석사까지 취득했다. 또 2005년엔 소방기술사, 2010년엔 정보통신기술사까지 합격해 국내 최초로 해당분야 기술사 3관왕을 이룩했다. 그는 2010년 과천에서 '나로이엔씨'란 전문 감리업체를 설립했고, 규모가 커지자 그해 6월 안양으로 회사를 이전했다. 위씨는 "종사자의 90% 이상이 남성인 기술분야에서 여성이 신뢰를 얻고 사업을 키워나가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여성만의 꼼꼼함과 섬세함으로 사업적 성공을 이루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