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거세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 여성의 높은 음역까지 소화했던 남성 성악가들이 카스트라토(Castrato)입니다. 카스트라토라는 말도 '거세(castration)'에서 비롯하지요. 영화 '파리넬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거세의 비윤리성에 대한 자성이 일면서 20세기 초 사라집니다.

거세가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고음에 도달한 남성 가수들을 카운터테너(Countertenor)라고 부릅니다. 소리가 나오는 위치로는 두성(頭聲)을 이용하고, 창법은 가성(假聲)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요. 팔세토(falsetto) 창법으로 불리는 가성에는 '거짓(false)'이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카운터테너는 평소에는 부드러운 중저음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요. 예전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멋진 바리톤 음성이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알프레드 델러.

20세기에 카운터테너를 부활시킨 주역이 영국의 성악가 알프레드 델러(1912~1979)입니다. 소년 시절 성가대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활동했던 그는 높은 음역을 유지하기 위해 카운터테너 창법을 적극적으로 연마했습니다. 그는 1948년 자신의 이름을 딴 합창단인 '델러 콘소트(Deller Consort)'를 창단하고 지휘자 겸 독창자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7세기 영국 작곡가인 존 다울랜드와 퍼셀의 작품에 애정을 기울여서 300년 가까이 잊혀 있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들을 발굴했지요.

덕분에 그는 영국 바로크 음악의 선구자로 꼽혔지만, '여성 음역을 부르는 남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적지 않은 오해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연주한 뒤에는 여성 관객으로부터 "거세된 남성(eunuque)이냐"는 질문을 받았지요. 이때 델러는 "독특하다(unique)는 말씀이시겠지요"라고 재치 있게 답변했습니다.

카운터테너의 시초로 꼽히는 델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올해 그의 음악적 공로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합니다. 그가 1962년 창립한 영국 고음악 축제인 '스투어 페스티벌'에서는 평소 델러가 즐겨 불렀던 바흐와 헨델의 성악 작품을 연주하고, 안드레아스 숄과 마이클 챈스 등 인기 카운터테너들이 총출연하는 음악회도 열릴 예정입니다. 한 사람이 뿌린 씨앗이 훗날 풍성한 수확으로 돌아오는 건 음악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