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의 노래
데이비드 쾀멘 지음|이충호 옮김|김영사|884쪽|3만원
아프리카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는 수만년 동안 '도도'라는 새가 살았다. 학명은 라푸스 쿠쿨라투스. 비둘기목에 속했으나 몸집만 크고 날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도도도도'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붙인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도도는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먹고 뚱뚱한 두 다리로 숲 속을 뛰어다녔다. 진화가 거듭될수록 몸집은 더 커졌고 날개는 퇴화됐다. 날 필요가 없었다. 섬에는 도도를 위협할 만한 포식동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셔스 섬에만 살았던 도도는 섬 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하지만 16세기에 인간이 섬에 상륙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598년 모리셔스 섬에 당도한 네덜란드 탐사대는 도도를 '잡아먹은' 최초의 인간. 3년 뒤 출간된 항해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네덜란드의 백조보다 몸집이 크고 머리가 아주 크며, 절반은 후드 같은 피부로 덮여 있는 새가 흔했다.(중략) 우리는 이 새를 발크뵈헬(역겨운 새)이라고 불렀는데, 오래 끓일수록 고기가 질겨져서 먹기 힘들었기 때문이다"(364쪽). 이후 반세기 이상 인도양을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도도는 신선한 고기로 애용됐다. 공급이 넘치면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해 저장했고 남으면 보관했다가 먹었다. 삶은 도도, 로스트 도도, 도도 피클, 훈제 도도…. 한 번에 알을 한 개만 낳는 새에게 이런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인간이 섬에 들여온 돼지와 원숭이는 도도의 알을 무섭게 먹어치웠다. 1690년 무렵 도도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신이 다른 종을 멸종시켰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최초의 사례다.
◇도도는 왜 멸종했나
1996년 발간돼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도도의 노래'가 '모던&클래식' 시리즈로 새 단장돼 나왔다. 자연생태 저술가인 데이비드 쾀멘이 인간에 의해 멸종한 도도새를 중심으로 지구 곳곳의 섬을 찾아다니며 멸종 생물의 발자취를 추적한 책이다. '섬 생물지리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소개하면서 생태학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고전이다.
도도는 왜 멸종했을까. 한 개체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사냥이나 외래종 도입 같은 인간 활동, 허리케인이나 벼락 같은 환경 요인도 있다. 서식지에 대한 적응 능력이 떨어질수록, 육식동물일수록, 특히 큰 육식동물일수록 멸종 위험이 커진다.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희귀성'. 개체군이 작은 종일수록 쉽게 멸종한다. 도도가 멸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도의 멸종은 '작은 섬'에서 일어났다. 생태학적으로 섬에 '격리'된 개체군이 너무 희귀해졌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 생태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1600년 이후 사라진 조류종 171개 중 90% 이상이 섬에서 살다가 멸종했다. 사모아섬에서는 사모아숲뜸부기가 멸종했고 트리스탄다쿠나 섬에서는 트리스탄쇠물닭이 사라졌다. 여기서 '섬 생물지리학'이 탄생했다.
◇인간이 불러온 참극
신석기 시대 이후 인류의 항해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까지 전 세계 조류종 중 약 20%가 멸종했다. 인간이 마다가스카르 섬, 뉴질랜드, 누벨칼레도니 섬, 하와이 제도를 정복하면서 각 섬에 서식하던 고유종들을 죽여 없앴다. 나그네비둘기, 포클랜드 늑대…. 심지어 인간도 있다. 태즈메이니아 섬의 원주민도 백인 유럽인에 의해 같은 방식으로 멸종됐다.
문제는 멸종률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멸종은 100만년에 몇 종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수백 년 사이에 멸종 속도는 더 빨라졌고, 위험 범위도 조류에서 모든 종류의 동식물로, 섬에서 모든 대륙으로 넓어졌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수십 년 안에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역사의 6번째 대멸종은 인간이 통나무배와 범선, 자동차, 불도저, 항생제 등을 발명한 무렵에 일어났다.
◇희망은 있다
무차별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 논리에 경종을 울린 생태학 교과서. 하지만 희망도 잃지 않는다. 저자는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자연보호주의자의 활동도 상세히 소개한다. 모리셔스 섬에서 위기에 처한 황조롱이를 구해낸 칼 존스의 이야기가 빛을 발한다. 모리셔스황조롱이는 살아남은 개체가 10마리도 되지 않았지만, 존스는 몇년 만에 수백 마리로 불려놓는 기적을 일궈냈다. "시간이 있는 한 희망도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찰스 다윈의 역작 '종의 기원'에 숨겨진 진실, '월리스선'을 최초로 제시한 앨프리드 월리스의 이야기 등 진화생물학의 역사를 현재 시점과 교차해가며 치밀하게 엮었다. 뛰어난 고전은 역시 생명력이 강하다는 걸 일깨워주는 수작. 900페이지라는 두께에 겁먹지 말고 도전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