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명작(名作)이라고 하는 것은 태풍이 오니 바람이 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985년 영국 런던 초연 이후 관객만해도 43개국 6000만명이다. 3일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개막한 '레미제라블'이 연말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것은 제작비 200억원이 투입된 대작(大作)의 첫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기 때문. 처음 공개되는 25주년 버전의 무대, 7개월간 10차 오디션 끝에 선발된 배우, 멸종 위기에 놓인 싱글 캐스트(한 배역을 한 배우가 소화)에 대한 궁금증도 인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레미제라블'을 3일 첫 공연과 6일 2회차 공연에서 확인해봤다.

◇연기―'자베르' 문종원의 재발견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베르 역의 문종원이다. 왁자지껄한 소동 속을 그가 걸으면 주위가 얼어붙는다. 흥겨운 쇼 뮤지컬인 '조로' 무대에서도 홀로 안광(眼光)을 뿜던 그가 장발장 체포를 다짐하는 '별(Stars)'을 부르며 두 팔을 펼칠 때는, 내년 각종 연기상을 품에 안게 될 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지난 3일 개막한 뮤지컬‘레미제라블’은 장발장 역의 정성화(오른쪽 앉은 이)와 자베르 역의 문종원(왼쪽) 등이 싱글 캐스트의 탄탄한 힘을 보여준다.

절정의 가창력과 연기의 정성화(장발장)는 '집으로(Bring Him Home)' 등에서 그만의 호소력을 보여준다. 사기꾼 떼나르디에 부부 역의 임춘길과 박준면은 무거워지기 쉬운 무대에 생동감과 활기를 준다. 모든 여배우가 꿈꾼다는 '나 홀로(On My Own)'를 부르는 박지연(에포닌)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마리우스를 향한 외사랑에 설득력을 높인다.

아쉬운 것은 팡틴 역의 조정은이다. 전작(前作) '맨 오브 라만차'의 창녀 알돈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 꿈을 꾸었네(I Dreamed a Dream)'에서는 알돈자의 절규가 있을 뿐, 벼랑에 몰린 팡틴의 절박함이 없다. 코제트 역으로 데뷔하는 이지수는 미성(美聲)이지만, 노래도 연기여야 함을 아직 체화하지 못했다.

◇무대―위고의 영혼이 숨쉬는 영상

새 무대는 기존 회전무대를 없애고 거의 모든 장면에서 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영상을 쓴다. 일부 라이선스 뮤지컬의 과도한 영상 효과에 질린 관객으로서는 보기 전부터 우려가 되는 부분. 그러나 '레미제라블' 영상은 배경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배우의 연기를 짓누르지 않는다. 기자가 지난 5월 런던에서 본 오리지널 회전무대와 비교해봤을 때, 웅장함 대신 부드러움을 입고 드라마를 받치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영상이 만들어낸 최고의 장면은 자베르의 자살이다. 일생을 바쳐온 강고한 신념이 무너진 사나이가 끝내 검은 강물 아래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생전 처음 뮤지컬을 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격랑을 일으킬 것이다.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둘러업고 하수구를 도는 장면은 최소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동선을 보여준다.

◇가사―압축적으로 운율 살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조광화씨가 번역한 40곡은 소절마다 최대 4어절을 넘지 않는 압축적인 가사 속에서 함축적 의미와 운율을 효과적으로 담았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3·4조 리듬에 짧은 음절을 경제적으로 얹었다. '그래도 뮤지컬은 원어로 즐겨야 한다'는 일부 관객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귀에 감길만 하다.

▷25일까지 용인 포은아트홀, 2013년 4월 9일부터 서울 블루스퀘어, (02)547-5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