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애(정치외교·1985년 졸업·아리랑 TV 사장·전 CNN 지국장)… "나만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시간"
나는 인생과 사회생활의 큰 교훈을 이화에서 얻었다. 여자로서 사는 것, 한국인으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해 이화에서 깨달았다. 그 교훈을 잊지 않고자 오늘까지 이화의 졸업 반지를 끼고 살았다.
이화에서의 생활은 스스로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만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에 대한 욕심도 컸지만, 이것저것 다른 것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 공부도 공부지만 학교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던 학생이었다. 이런 욕심이 학교를 졸업하고 외신 기자를 거쳐, G20 대변인, 현재의 아리랑 TV 사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역할을 하게끔 한 것 같다.
'이화 보이스(Ewha Voice)' 영어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기자로서의 꿈을 처음 가지게 되었다. 인터뷰 하고, 마감 시각에 맞추려고 밤새 기사를 쓰면서 이 일을 평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때 내가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대학 생활은 인생의 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 꽃을 이화에서 아름답게 피우시길 바란다.
◇변영주(법학·1989년 졸업·영화감독·영화 '낮은 목소리'로 국제영화제 수상)… "이화의 역동적인 삶 느껴보시길"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특별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는 않았다. 공부가 유달리 재미있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점을 잘 받았던 모범적인 학생도 아니었다. 그 시대의 다른 많은 학생이 그랬듯이 학생운동도 했었다.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여성학 연구 수업을 꼽을 수 있다. 수업에서 과제로 리포트 대신 친구들과 함께 짧은 영화 한 편을 만들어서 제출했었다. 완성도를 따지자면 높지는 않았지만,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고, 다른 수업은 몰라도 여성학에 관심을 갖고 재밌게 들었던 것 같다.
4년간의 대학생활 동안 내가 배운 최고의 가치는 ‘결국 내가 하지 않으면 나는 변화할 수 없고, 세상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는 능동의 힘이었다.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히기를 서슴지 않는 용기와 과감함을 가졌으면 한다. 일상을 뒤집어 보는 과감성, 당신이 아는 것보다 세상이 평가하는 것보다 이화에서의 삶은 훨씬 더 역동적이다. 직접 이화의 멤버가 되어 즐기시기를!
◇박혜진(의학·1995년 졸업·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성별에 대한 편견, 버릴 수 있었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첫 번째 여성 법의관으로서 일해온 지 11년째이다. 이화여대 의대 레지던트 시절 해부병리과 교수들에게 의뢰해 온 국과수 부검에 조수로 따라갔던 게 계기가 되어 법의관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에 법의관은 사체를 부검하느라 일은 험한데 박봉이어서 해부병리과 전문의 자격증이 필수인 법의관이 되겠다는 지원자는 워낙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법의관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던 때문인지, 첫 번째 법의관에 지원했을 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전문의 자격증을 딴 후 몇 개월간 매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출근해 부검현장을 지킨 결과 수십년간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법의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자라는 성별이 법의관으로서 제약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화를 다녔기에 여성의 역할에 관한 뿌리 깊은 편견에 물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로 나와 마주치는 도전과 경쟁에서 회피하지 않았다. 이화인은 사회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꿔왔다. 위대한 이화의 역사에 여러분도 함께했으면 한다.
◇김다예(화학 4·제46회 외무고시 합격)… "다양한 기회로 미래 밝혀줘"
이화에서의 생활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힘이 컸다. 화학 전공을 살리지 않고 외교관으로 진로를 결심했을 때에 지도교수님인 고수영 교수님은 내 선택을 지지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외교관으로서의 꿈을 갖게 된 것은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는데,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WESLEYAN COLLEGE에 1년 동안 다녀왔다. 다양한 국적의 많은 친구도 사귀고, 하버드 주최 모의 유엔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입학할 때 4년 장학금을 받아서 부모님의 부담을 덜었고, 교환학생 때도 학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걱정 없이 학업에 집중했다.
◇이슬(환경공학 3·공대 학생회 대표)… "내 생애 가장 보물같은 경험들"
입학 전, 학교 홈페이지를 보고 우연히 지원하게 된 멘토링 프로그램 ‘이화 다우리’를 통해 이화에서의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한 학기 동안 선배 멘토 언니가 학교생활 팁과 유익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나 역시 환경공학과 학생대표를 하며 선·후배 간의 멘토링을 활성화했다.
이화봉사단으로도 활동하며 국내와 해외 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화문화기획단의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126명의 이화인을 모아 카드섹션도 하고, 제1회 추억의 가을운동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수많은 회의와 준비기간을 거쳐 행사들을 직접 만들어냈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 이를 함께한 선·후배, 동기들과의 인연은 이화에서 얻은 보물이다.
◇한송원(국어국문학 2·이화 캠퍼스지킴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다"
여러 외국 친구와 문화를 교류하며 국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외국 교환학생들을 위한 자원봉사단체인 '이화피스버디' 활동을 1년 반째 하면서 세계 6대륙의 외국인 친구가 한 명씩 생겼다. 2012년 여름에는 EGI 해외탐사를 통해 독일, 덴마크, 핀란드를 다녀왔다.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계신 69, 70학번 선배님들과의 따뜻한 만남으로 '글로벌 이화'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이화에서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배운다. 이화 안에서는 여성이 주인이다. 누구든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한다. 특히 스크랜튼 수업시간에 이러한 힘을 많이 느낀다. 스크랜튼학부 수업은 에세이와 토론수업으로 이루어지는 과목이 많다. 타인의 생각에도 공감하고,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큰 자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