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위·십이지장·대장·비장(지라)도 장기이식이 가능해진다. 다만 소장(小腸)과 동시에 이식 수술을 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소화기 중증 질환은 소장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이미 위장 등 다른 소화 장기들도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배 안의 소화기관을 통째로 갈아 주는 치료가 유일한 방법이다. 위나 대장 등 몇 개만 따로 떼어 이식하면 효과가 없다. 위나 대장 등 개별 소화장기는 대개 질병 부위를 잘라내는 식으로 치료를 하는 것으로 끝내므로 이식치료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만일 이식치료를 하면 평생 면역 억제제를 먹어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그러나 소장은 일부 부위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치료가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소화장기와 함께 이식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27일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국내에서 법적으로 이식이 허용된 장기는 13개로 늘었다. 간과 신장·심장·폐·췌장·골수·안구(眼球) 등 7가지는 1999년 장기이식법이 처음 제정된 때부터 허용됐다. 2009년에는 소장과 췌도(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세포) 등 2개가 추가됐다.

그동안 위·십이지장·대장·비장(지라) 등 4개 장기는 이식을 시행할 의학적 수요(환자)가 많지 않았거나, 확실한 효과를 담보할 의료기술이 없다고 판단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위나 십이지장, 대장 등을 통째로 가져와 이식할 질병이 극히 드물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국내 의료진이 처음으로 관련 장기에 대한 이식 수술을 시도하여 성공하면서 이를 법적으로 허용하게 된 것이다.

이번 4개 장기이식 개정안은 '은서법'으로 불린다. 지난해 10월 '만성 가성 장폐색증'이라는 난치성 질환으로 생명이 위태롭던 조은서(7세)양은 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김대연 교수팀에 의해 간·췌장·소장과 함께 위·십이지장·대장·비장 등 소화기관 7개 장기를 이식받아 극적으로 살아났다. 이 병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 흡수가 안 되고, 다 토해내는 희귀질환이다. 수술 당시에는 위·십이지장 등 4개 장기가 법적으로 이식이 허용된 장기가 아니었지만, 은서양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후 밥맛을 알게 된 은서는 건강한 상태이며, 몸무게도 부쩍 늘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이처럼 장기이식은 의학적 수요와 의료 기술이 먼저 앞서 나가면, 이를 법이 허용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1988년 국내 최초로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뇌사자로부터 간을 기증받아 간 이식을 시행할 때도, 우리나라에서는 뇌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엄밀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면, 살인에 해당한다는 논란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뇌사는 소생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판단이 확실하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에 묵인됐다. 그러다 1999년 장기이식법이 제정되면서 뇌사자 장기이식이 제도권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