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전쟁 없는 평화를 꿈꾼 알프레드 노벨의 뜻과도 어긋난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하루 앞둔 9일(현지 시각)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EU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노르웨이 인권단체와 사회주의 좌파당 등 1000여명이 횃불을 들고 "EU는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외치며 행진했다.
EU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EU가 유럽의 평화와 화합,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최악의 경제 위기로 회원국 간 대립과 사회 불안이 커 EU의 수상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 등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 명도 앞서 노벨위원회에 공개 항의서한을 보냈다.
EU 내부적으로도 노벨평화상 수상의 기쁨을 만끽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10일 오후 1시 오슬로 시청사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초대받은 EU 회원국 정상들은 단상 왼쪽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속에 영국·체코·슬로베니아 등 6개국 정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U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은 일찌감치 불참 의사를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다른 사람을 보내도 충분하다"며 닉 클레그 부총리를 대리 참석시켰다. 캐머런 총리의 불참은 최근 자신이 소속된 보수당 내에서 확산 중인 반(反)EU 정서를 감안한 결정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 위기로 파운드화를 사용하는 자신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 때문에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토르비에른 야글란 위원장은 "앞으로도 유럽인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AFP 통신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논란 역시 EU 27개 회원국이 갈등의 여지가 없어야 할 일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대립하는 예라고 보도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의장은 비판을 의식한 듯 시상식 연설에서 "우리는 완벽한 협의를 해 왔으며,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반롬푀이 의장과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EU를 대표해 상을 받았다. EU는 이번에 받은 800만크로네(15억원)의 상금에 돈을 더 보태 분쟁지역 어린이 교육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화상 외에 노벨 생리의학상과 문학상 등 나머지 5개 부문 시상식은 같은 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