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정훈씨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집은 대개 둘 중 하나의 풍광을 택한다. 울창한 자연 속에 겸손히 숨어버릴 것이냐, 존재감을 드러내며 작위적인 풍경을 만들어낼 것이냐.

최근 지어진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 '곡선이 있는 집'은 이 두 가지 딜레마를 독특한 외관으로 절충시킨 집이다. 두드러지는 듯하지만 그 모양새는 인근 산의 능선을 빼닮았다. 이른바 "산속에 있되, 묻혀 있지 않은 집"이다. 2010년 문화부 선정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인 이정훈(37·조호건축 대표)씨가 설계했다.

24일 이 집에서 만난 건축가는 "주변 환경을 철저히 해석해 땅에 어울리는 집을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광교산으로 둘러싸인 집터를 보는 순간 '주변을 그대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층집의 연면적은 182㎡(55평), 공사비는 평당 600만원 들었다.

이 집을 규정하는 두 가지 특징은 1만5000개의 전벽돌(검은 벽돌), 그리고 오목렌즈 같은 디자인이다. 건축가는 전벽돌을 촘촘하게 쌓되 양쪽 가장자리로 갈수록 서로 조금씩 비틀리도록 했고, 지붕 끄트머리를 빼올려 날렵하게 만들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비대칭 오목렌즈 같은 이 디자인은 광교산의 능선을 그대로 담은 것. "벽돌을 정갈하게 쌓되 벽돌이 가장자리로 갈수록 점점 더 비틀리도록 했어요. 발수제(撥水劑)를 바른 벽돌의 앞면과 바르지 않은 벽돌의 거친 측면이 서로 대조돼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죠." 덕분에 낮 동안 이 집은 잉어의 비늘처럼 은빛으로 빛난다.

건축가 이정훈씨가 설계한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곡선이 있는 집’. 주변 광교산 능선과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지붕선이 특징이다. 1만5000여개의 전벽돌(검은 벽돌)로 마감했다.

"대지가 좁지만 주차에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뜻에 따라 높이 2m의 노출 콘크리트 필로티(기둥만으로 된 구조)로 집을 띄웠다. 덕분에 건축주는 넉넉한 주차공간과 조경이 가능한 마당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집도 뒷배경의 산을 가리지 않게 됐다. "남쪽 대문으로 진입할 때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오는 효과를 위해" 지붕 서쪽 가장자리를 동쪽보다 더 높이 빼올린 건 건축주와 방문객, 심지어 등산객의 시선을 배려한 디테일이다. 건축가는 이 집의 입면 또한 광교산 자락처럼 부드러운 반원 형태로 파이게 만들었다.

(위 사진)조금씩 엇갈리게 쌓은 전벽돌. 마치 잉어의 비늘 같다, (아래 사진)5m 높이 천장고를 가진 거실. 남향 유리통창이 최대한의 채광·난방 효과를 준다.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필로티로 띄워진 1층 서쪽 일부를 칼로 벤 듯 잘라 발코니로 만들고, 주변 외관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처리한 것. "전벽돌만으로 구성된 밋밋함을 없애기 위한 의도"란다. 덕분에 광교산의 수려한 산세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눈 덮인 마을 풍경이 이 스테인리스 스틸판에 그림처럼 반사된다. 5m에 달하는 부엌·거실 천장고와 깊이감 있는 천창, 다락방처럼 내밀하게 구성된 기도실 겸 손님방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건축주의 삶처럼 소박하고 경건한 느낌을 준다.

건축주 최정임(59)씨는 "하늘의 구름을 담아내는 듯한 지붕, 방문객을 손 벌려 환영하는 듯한 이 집의 포근한 모습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이 집의 이름인 '곡선이 있는 집'은 동네 우체부 아저씨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