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장윤석 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김학용, 민주당 최재성 의원 그리고 계수조정 소위원회 의원 6명 등 9명이 지난 1일과 2일 중남미와 아프리카 두 조로 나뉘어 해외 출장에 나섰다. 올해 예산안은 헌정 사상 처음 해를 넘겨 1일 새벽 6시 국회를 통과했다. 장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은 예산안 처리 9시간 뒤인 1일 오후 3시 멕시코·코스타리카·파나마 3개국 순방길에 올랐고 여야 간사 등 4명은 2일 케냐·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 3개국 순방 일정을 떠났다.
예결위원들의 행선지는 우리와 아무 현안도 걸려 있지 않은 나라들이다. 출장 명목은 예산 심사 시스템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선진 예산 심사제도를 배우러 갔다는 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만하다. 그들 뒤치다꺼리하느라 그곳 대사관 직원들만 고생하게 됐다.
이번 예산안 심사는 정부안을 삭감하는 심사는 국회 회의실에서 속기록을 남기며 정식으로 진행됐지만 의원들의 민원을 반영하는 증액 심사는 장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시내 호텔 객실 두 곳을 오가며 계수조정 소위위원들이 취합해온 민원 쪽지 수백 건을 나눠 먹기 식으로 여야가 갈라 먹었다. 이들은 예년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쪽지 민원을 심사하느라 '새해 회계연도 개시(1월 1일)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을 위반한 것은 물론 1963년 현행 예산안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해를 넘겨 처리한 기록을 남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의 여행 일정엔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여야의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비행기 타기 수 시간 전에 예산을 통과시키는 재주를 부렸다. 팀당 7000여만원인 출장 경비 1억5000만원은 국회 예결위 예산에서 충당됐다. 나쁜 짓 하는 감(感)은 족집게처럼 정확해 그들이 떠난 후 한반도는 영하 16도의 강추위에 뒤덮였다.
이번 예산 심사에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 공약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며 공군 차기 전투기(F-X) 및 대형 공격헬기 도입 예산 등 전력 증강 예산 4000억원을 삭감했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SOC 예산도 대폭 줄였다. 그러나 지역구 차원의 SOC 예산, 특히 새누리당 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 등 친박(親朴) 실세 지역의 민원 예산이 수십억원씩 증액됐다.
여야는 대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불체포특권, 의원연금 등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엔 하루만 의원 배지를 달아도 65세부터 매달 120만원씩 지급하는 의원연금 예산 128억원이 그대로 포함됐다. 국민이 매달 120만원씩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월 30만원씩 30년간 납입해야 한다.
의원들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지역구 민원을 챙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 국회에서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도 염치와 정도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오죽하면 예결위 소속 야당 의원이 "이번엔 해도 너무 했다. 국가 예산 다루는 분들이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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