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기획취재부 차장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2012년 최고 외국 영화로 '토리노의 말'을 꼽은 뒤 한 줄짜리 평을 남겼다. "여전히 위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이 헝가리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솟았다. 요즘 만들어지고 있는 위대한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작년에 개봉한 위대한 영화를 나는 왜 제목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까.

이 영화는 작년 2월 개봉해 이미 종영했으나, 인터넷에서 의외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단돈 2000원을 지불하면 컴퓨터 2대와 스마트폰 2대에 총 4번 다운받을 수 있고, 무제한 감상할 수 있다. 위대한 영화의 보잘것없는 파격 세일이다.

이 영화는 '헝가리 거장(巨匠)'이라는 벨라 타르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이다. 그의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는데 벨라 타르는 '토리노의 말'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고 한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슨 영화를 봐 왔던 것일까.

'토리노의 말'은 흑백영화였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못 만들어낼 장면이 없는 시대에 흑백으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일단 인터넷에 공개돼있는 예고편부터 보았다. 새카만 화면을 기름 등불 하나가 간신히 밝히고 있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불빛만 웅얼거리듯 움직인다. 30초쯤 지나자 불빛이 꺼진다. 그것이 예고편의 전부였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도 예고편은 대개 재미있지 않은가. 2시간26분짜리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비스듬히 누워있던 자세를 바로잡아 앉았다.

영화는 남자의 묵직한 읊조림으로 시작한다.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문밖으로 나선다. 그런데 길에서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니체는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를 말리고 말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있다가 마지막 말을 웅얼거렸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이 영화를 줄거리로 요약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늙은 남자 한 명과 젊은 여자 한 명, 그리고 말 한 마리가 주인공이다. 남녀는 부녀지간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총 6일간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데, 그 일이라는 게 옷을 갈아입고 물을 길어오고 감자 두 알을 삶아 소금 뿌려 먹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찾아와서 길고 긴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집시들이 한 번 몰려와 행패를 부리고 가는 것이 이 영화 최대의 소동이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협연하는 단조로운 불협화음이 영화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 불길하게 기어간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첫째 날엔 힘겹게라도 마차를 끌던 말이 둘째 날부터는 움직이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노인이 평생 들어왔던, 벌레가 나무 좀먹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우물이 바짝 말라버리더니 마지막 날엔 기름 가득 든 램프에 불이 붙지 않는다. 물도 없고 불도 없는 캄캄한 돌집에서 부녀는 평소처럼 감자 한 알씩 놓고 마주 앉는다. 대사라곤 거의 없던 아버지가 딸에게 말한다. "먹어. 먹어야 해." 그리고 생감자를 한입 베어 문다. "꽈드득" 하고 감자 깨무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린다. 그 노인이 카메라를 쏘아보며 영화가 끝나는데, 그의 식탁에 함께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섬뜩하다.

예술영화는 대개 지루하다. 불친절하고 답답하다. 카메라는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토리노의 말'은 그런 영화의 정점(頂點)에서 멀지 않다. 이런 영화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말은 "재미없다"이다. "평론가가 극찬한 영화는 재미없다"는 속설(俗說)을 증명하는 영화인 셈이다. 이 재미없는 영화가 2011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비롯한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일반 관객과 영화제 심사위원(또는 영화평론가)의 시각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누구나 영화를 볼 때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종합해 나가려는 심리가 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해 여러 사건을 동시에 벌이는 영화일수록 보는 사람이 골치 아프기 십상이다. 복잡한 사건과 인물이 결말에 이르러 명쾌하게 정리되면 관객도 쾌감을 느낀다. 비로소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알게 되는 후련함 같은 것이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가 말하려는 것을 알아내려는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그저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영화 해석에 정답이 없는 것, 그것이 예술영화의 매력이다. '토리노의 말' 역시 창세기의 역(逆)진행이라든가 소멸과 무화(無化)에 대한 예술적 승화라든가 하는 해설이 널려있지만 나는 영화 첫 장면에서 흙바람을 뚫고 마차를 끄는 말의 얼굴과 마지막에 노인이 감자 깨무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영화'에 뭔가 동참한 것같이 약간 들뜨는 기분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