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세 엄마가 갑자기 블로그를 만들었다. 30년간 살림만 했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엔 부산 부전시장의 다섯평 철물점을 물려받아 운영하던 엄마가 자신만의 놀이터를 개설했다. 딸은 엄마의 블로그를 엿보며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진실로 궁금한 적이 없었다."

신간 '엄마의 비밀정원'(신순화·김미조 지음)은 엄마와 딸이 공저자인 독특한 책. '숲 속 오솔길에서 열네 살 소녀를 만나다'라는 부제처럼, 엄마의 블로그를 훔쳐보면서 몰랐던 엄마를 발견해가는 딸의 고백이다. 최근 잇달아 쏟아지고 있는 '엄마와 딸' 콘셉트의 책이다.

엄마를 추억하고 깨닫다

'엄마와 딸'(신달자), '엄마와 연애할 때'(임경선), '엄마, 사라지지 마'(한설희)….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고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의 책들이 지난해부터 속속 출간되고 있다. 신달자 에세이집 '엄마와 딸'은 엄마에 대한 시인의 지독한 미움과 죄스러움을 토해낸 절절한 사모곡(思母曲). 출간 보름 만에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22위에 올랐다.

작년 7월 출간된 '엄마와 연애할 때'는 결혼과 육아를 통해 뒤늦게 엄마를 이해하면서 스스로 엄마가 되는 과정을 써내려간 책이다. 저자는 "내 딸이 아이를 낳은 뒤에 볼 책"이라며 "육아 이야기의 방점이 '엄마'에 찍혔다"고 썼다. '엄마 사라지지 마'는 노년을 맞은 엄마의 이미지를 70장의 애틋한 사진과 글로 담은 포토에세이집. 21일 출간예정인 가수 인순이씨의 에세이 '딸에게'의 부제는 '희망엄마 인순이가 딸에게 쓰는 편지'다.

여행서 시장에도 '엄마&딸'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5월 출간돼 인기를 끈 '엄마 딸 여행'(이지나)은 모녀가 함께 떠날 만한 국내여행지를 소개한 가이드북. '결혼을 앞둔 딸, 다툼이 잦은 모녀를 위한 필독서'란 추천이 따라다닌다. 최근엔 번역가 엄마와 고등학생 딸의 유쾌한 도쿄 여행기 '길치모녀 도쿄헤매記'(권남희)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힐링 트렌드의 정점

왜 지금 '엄마와 딸'인가. 김미선 예스24 문학담당 MD는 "최근의 '엄마 딸 신드롬'은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지난해 3월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며 "최근의 힐링 트렌드와 더불어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인 '엄마'를 다방면으로 조명하는 추세"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팍팍할수록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현상이 출판 시장에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한양대 교수는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김정현의 베스트셀러 소설 '아버지'가 실직 가장을 양산했던 시대의 아픔을 반영했다면, 이제는 인생 멘토로서의 어머니 역할에 대한 기대 또는 필요가 커진 게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사실 '엄마 딸' 관계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애증적인 관계다. 힘든 현실에서 가장 친밀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회피하려는 인간의 회귀 본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