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 기자

부모는 빨치산이었다. 아버지는 전남도당 조직부부장, 어머니는 이현상이 이끌던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돼서야 감옥서 풀려난 아버지를 봤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마다 끄적끄적 글을 썼다. 시간이 흘러 그 역시 80년대 후반 노동운동 단체에서 일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4년여간 수배를 당하면서 부모의 빨치산 경험을 구술 정리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1990)을 출간했다. '작가'라는 타이틀과 세간의 화제, 판금 조치를 동시에 얻었다. 소설가 정지아(48·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전공전담교수·사진)씨의 '옛날' 얘기다.

오랜 침묵 끝에 2004년 소설집 '행복', 2008년 '봄빛'을 발표했다. 이번 주 새로 낸 '숲의 대화'(은행나무)는 세 번째 소설집이다.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봄날 오후, 과부 셋'과 '목욕 가는 날', 일본에 번역된 '핏줄' 등 단편 11편을 담고 있다.

치매 노인, 중증 장애인, 밑바닥 인생처럼 남루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어떤 생이든 한 우주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넌지시 위로하는 작품들이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씨는 "뼈만 있는 삶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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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봄날 오후…'에서 세 과부 할머니 에이꼬와 하루꼬, 사다꼬는 성격은 달라도 친자매처럼 의지하고 산다. 정씨는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어머니의 삶에서 따왔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배우고 자란 그녀의 어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들과 만나면 서로를 일본식 이름으로 부르며 여덟 살 소녀처럼 수다를 떤다. "아버지와 밥상머리에서도 사적인 대화를 안 할 정도로 정치적이었던 엄마가 유일하게 무장해제되는 순간이 바로 이때죠."

정씨는 3년째 '빨치산…'의 주무대이자 고향인 전남 구례의 인적 드문 산에서 살고 있다. "심심하고 외롭지만 그래서 좋다"고 했다. 여름이면 호박과 가지가 쑥쑥 크는 모습, 겨울엔 불길이 아궁이 속으로 빨려 사라지는 모습 보는 것도 좋다.

정씨는 "처음엔 동그란 호박만 예뻐했는데 지금은 찌그러진 호박도 눈에 들어온다"면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어쩔 수 없이 고달픈 삶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계속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