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아영(27)씨는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 소설을 처음 만나고 나서 벌써 예닐곱 번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엔 몰랐는데 '어린 왕자'는 성인을 위한 동화이고, 잘살고 있는지 계속 묻는 책"이라고 했다. "사람을 월급이나 아파트 평수로 저울질하는 것을 보면 갑갑해요. 그래서 '어린 왕자'가 더 그리워집니다."
본지는 지난달 중순 예스24 (www.yes24.com) 공식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주관식으로 질문했다. 30~40대 중심으로 독자 1223명(여성 896명)이 응답했다. 최근 다시 읽고 좋았던 책으로는 '어린 왕자'(52명),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21명),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18명),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16명) 등이 꼽혔다. 언젠가 다시 읽을 책을 묻자 역시 '어린 왕자'가 1위(23명)였고 '삼국지'(16명), '해리포터'(15명), 박경리의 '토지'(13명)가 뒤를 이었다. 〈그래픽 참조〉
◇다시 읽고 싶은 책 '어린 왕자'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가 작은 별에서 온 어린 왕자를 만나는 이야기. "본질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이고 마음으로 보인다"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져야 해" 등 여우가 들려준 말도 유명하다. 1943년 발표돼 세계에서 1억부 넘게 팔렸다.
특정 책을 섬기는 사람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당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책이 뭐냐'고 묻자 68명이 성경이라고 답했고 '어린 왕자'(55명), '아직 없다'(30명), 법정 스님의 '무소유'(24명),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23명) 순이었다. 출판 평론가 표정훈 한양대 교수는 "'어린 왕자'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될 때 통과의례와 같은 책"이라고 해석했다.
◇안온함, 변화, 그사이 긴장이 좋다
영국에서 몇 해 전 '다시 읽는 책' 설문조사가 있었다. 독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1~3위로 꼽았고 '반지의 제왕'이 4위, '오만과 편견'이 5위였다. 20위 안에 어린이 책이 4종 포함됐고 성경은 16위,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순위권 밖이었다. 미국 작가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는 최근 저서 '리리딩(On Rereading)'에서 "책을 다시 읽는 까닭은 무한하겠지만 그것으로 받는 보상은 변화나 안정일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다시 읽기'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어떤 안도감을 주면서 과거의 나를 기억하게 한다. 책은 그대로 있고 독자는 변한다. 안정과 변화 사이의 긴장이 '다시 읽기'의 핵심이다."
'상실의 시대'를 최근 다시 읽었다는 김민진(30)씨는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독자가 다시 읽는 책은 문학이 54%였다. 예스24 문학담당 김미선씨는 "입장에 따라 여러 갈래로 읽힌다는 점, 연령별로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는 점이 문학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실망한 책, 기대하는 작가는?
이번 설문에서는 '기대만큼 실망이 컸던 책'도 물었다. 응답자의 66%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22명), 론다 번의 '시크릿'(15명),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9명)와 '1Q84'(6명), 코엘료의 '연금술사'(6명) 등으로 나타났다.
또 56%는 "신작이 기대되는 작가가 있다"고 했다. 김애란(35명), 히가시노 게이고(31명), 신경숙(26명), 김연수(20명), 공지영(19명), 기욤 뮈소(18명), 하루키(18명), 박민규(18명), 베르나르 베르베르(17명), 알랭 드 보통(17명), 정유정(16명), 김훈(14명), 김진명(13명), 천명관(13명), 김영하(12명)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