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딱]음악방송 초반부를 장식하는 숱한 신인가수들. 대중의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음악이 다 똑같고, 다 비슷하게 생겼으며, 떼거지로 나와 분간도 안된다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보면 이들은 정말 정자가 난자를 만나는 수준의 역경을 딛고 무대에 선 것이다. 음악방송은 음반을 내면 그냥 서는 곳이 아닌 것. 이들의 매니저는 발에 땀나도록 뛰어야 한다.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경. 여의도 KBS 앞 커피숍은 붐빈다. 국내 내로라하는 기획사 매니저들이 모두 모인다. 대표급부터 7~8년차 실장급까지 각양각색. 대형기획사부터 '듣보잡' 제작자까지 모두 모인 이유는 바로 KBS '뮤직뱅크' PD를 '알현'하기 위해서다. PD는 회의를 하느라, 이런 저런 제작자를 만나느라 바쁘다. 그러다보면 매니저들의 대기 시간은 보통 3시간 정도. 그래도 장유유서가 있다. 선배 매니저들이 가끔 앞질러 PD를 만난다. 그렇게 기다려서 만나도 미팅 시간은 5분여. 대형기획사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이미 출연이 확정됐지만 '예의상' 방송국을 찾는다.
몸집이 좀 있는 회사는 대형가수는 물론, 신인가수도 어느 정도 출연을 보장 받는다. 히트곡이 없어도 7~8주씩 연속으로 출연시킬 수 있다. 오랜 기간 경력을 쌓으면서 PD들과 친분을 쌓은데다 곧 나오는 대형 가수가 있으므로 신인가수로 '딜'하기 쉽다. 문제는 소형 기획사나 신생 기획사다. 이들은 아무 연고가 없으므로, 이미 경력을 좀 쌓은 매니저들을 비싼 몸값에 스카웃한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 실패한 경우, 회사는 방송 홍보 명목으로 가져간 비용을 도로 내놓으라며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는 수천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이같이 단기 계약으로 방송 PR만 하는 전문 매니저가 늘자, 몇몇 PD들은 '홍보 매니저'는 사절하겠다고 못박기도 했다.
화요일부터 치열한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뮤직뱅크'를 시작으로, 전체적인 윤곽이 나타난다. 방송사들이 금주 출연진을 확정하는 것이다. 중급 이하 기획사들은 섭외 전화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른 회사는 전화가 왔다는데, 연락이 없다면 이번주 출연은 물건너 간 것이다. 실장, 이사급 매니저들 사이에 '너에겐 전화가 왔느냐'는 문의가 잇따른다.
매니저들이 크게 신경 쓰는 프로그램은 '뮤직뱅크'를 비롯해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엠넷 '엠카운트다운' 등 네군데다. 다른 프로그램의 섭외 과정도 비슷하다. 그러면 거의 일주일 내내 방송국 PD와의 '만남'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출연이 비교적 쉽게 보장받는 대형기획사와 가장 차이가 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보도자료에 이번주 엠넷 '엠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KBS '뮤직뱅크', MBC '쇼!음악중심', SBS '인기가요'로 팬들을 만난다고 쓰는 건, 그야말로 '능력자'만 가능한 것이다.
대형기획사라고 다 쉬운 건 아니다. 컴백 무대로 몇분을 할당 받는지, 어느 순서의 무대에 서는지는 매니저의 능력을 확인받는 바로미터다. 예능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것. 그래서 시청자들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형기획사의 인기 연예인이 뜬금없이 신인가수들과 달리기를 하고, 노래방 노래를 하고, 마술을 구경하고, 중년 선배들과 토크를 하는 광경을. 대체로 PD와의 관계, 섭외를 둘러싼 역학관계로 발생하는 장면이다. 거절도 능력이다. 몇몇 매니저들은 섭외 요청에 '싸가지 없이' 불응했다가, 영영 '아웃'되기도 한다.
신인가수를 키우겠다던 스타가 갑자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백발백중 음악프로그램을 위한 것이다. 신인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방송이 필요하고, 방송사는 '사장님'을 원하기 때문. 방송과는 절대 안맞다던 수줍음 많은 뮤지션도, 한때 콧대 높았던 가수도 제작자로 나서면서 다소곳이 방송국 나들이에 나섰다.
제작진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방송 시간은 한정돼있는데, 한팀이라도 더 무대에 세워주려고 노래를 짧게 자르기도 한다. 수많은 매니저들의 '읍소'를 받으며 거절하는 것도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다. 대형가수 섭외는 예전처럼 쉽지만은 않다. 뭘해도 시청률은 제자리걸음, 결국 모두 순위제를 부활시키기까지 했다.
14일은 엠넷 '엠카운트다운'이 방송된다. 15일 '뮤직뱅크', 16일 '쇼!음악중심', 17일 '인기가요'로 음악방송 기간이 진행된다. 어떤 가수는 각 방송의 메인 무대에 설 것이고, 어떤 비인기 가수는 모습을 드러냈다, 빠졌다 들쑥날쑥할 것이다. 어떤 가수는 지난주 방송이 마지막 방송이 됐을 수도 있다.
딱히 차별점을 모르겠는데 계속 쏟아져나오는 가수들에 피로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고생 끝에 저 무대에 선 가수들에게 한번 정도 '짠한' 시선을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저 무대 구석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매니저를 생각하면서. 의외로, 나름 괜찮은 가수를 건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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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카운트다운'이 14일 컴백무대를 준비했다고 홍보하며 배포한 지나-걸스데이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