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국정원 기밀 유출 관련 부분을 축소 수사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기밀 누설 공모자를 밝혀놓고도 무혐의 처리하고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 보좌관'을 '민주통합당 대선 캠프 당직자'로 공소장 내용을 바꾸는 등 특정 정당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이 수사 막판에 달라졌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이 사건 관련자 기소 하루 전인 지난 13일 작성한 공소장과 14일 최종 공소장을 비교해본 결과 나타났다.
검찰은 13일 작성한 공소장에서 내부 정보 유출자인 국정원 전 직원 정모(49)씨의 친구 장모씨에 대해 기밀 유출을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당시 공소장에는 "장○○는 피고인들의 범행을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이를 은폐할 수 있도록 자신과 자신의 딸 명의 휴대폰을 피고인 김○○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공모하였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검찰은 지난달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할 때 장씨 자택도 압수수색하는 등 공범으로 수사해왔다.
그러나 수사 발표 당일 최종 공소장에서는 장씨의 공모 관련 부분이 삭제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소 하루 전까지 공모 혐의가 있다고 적시한 인물을 기소 당일 무혐의 처리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장씨의 범행 가담 정도가 미약해 처벌하지 않았고 공소장은 계속 다듬어왔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국정원 전 직원 김모(50)씨와 수십 차례 통화한 민주당 당직자 정모씨를 '김부겸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13일 공소장에 적었으나 최종 공소장에선 '민주통합당 대선 캠프 당직자'로 변경했다. 정씨는 김 전 의원의 오랜 보좌진으로, 김씨로부터 정보를 받아 국정원 댓글 사건을 폭로하고 국정원 여직원 감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폭로사건을 민주당이 대선을 위해 기획한 것이며, 그 배후에는 김 전 의원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보좌관 정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지 않았다. 검찰은 "민주당 간부인 정씨의 여직원 감금 주도 혐의는 선거법과 별개로 여전히 수사 중인데, 정씨는 '당의 방침'이라며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범행 동기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김씨가 민주당 측으로부터 국정원 고위직을 제안받았다"는 참고인 진술을 확보하고도 더 이상 수사를 진척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11일 "김씨가 민주당 측으로부터 국정원 기조실장 자리를 제안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김씨가 진술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진술이 있었다"고 밝혔었다.
검찰은 김씨의 범행 동기를 "자신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득을 얻기 위해"라고만 공소장에 기재했고, 공모자 정씨의 범행 동기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승진 또는 요직 발탁 등 인사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정도로만 두루뭉술 적었다. 김씨는 이번 사건으로 향후 정치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정씨는 국정원에서 파면됐지만 검찰이 밝힌 범행 동기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대선과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죄의 공소시효가 19일 만료된 만큼, 검찰이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고 수사를 마무리하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