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헌병 7기'라고 하면 부산에선 꽤 널리 알려져 있던 명칭이었다. 육군헌병학교 제7기생은 6·25 전쟁으로 우리 국토의 태반 이상을 빼앗기고 대구·부산·마산 지역을 포함한 최남단 일부만 남아 있던 1950년 8월 28일에 입교(입대)한 당시 6년제 중학교 상급학년생, 즉 현재의 고교생이 대부분이었다.
학생 신분에서 육군 헌병 병과 하사관이 된 이들 '헌7학도병' 1661명은 그해 10월 4일 수료와 동시에 전후방 부대에 배속됐다. 학업을 중단하고 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군의 기율 확립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엘리트 하사관 집단이었다. 이들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30년의 현역 복무를 수행,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역할을 다했다. 전쟁 중 헌7학도병이 수행한 주요 업적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비상계엄령 아래 사회질서 유지와 범법행위 단속, 함흥 철수 작전의 수행, 한국은행의 금괴 이송, 전쟁포로 수송 및 수용 관리 등이다. 이들이 훈련받던 육군헌병학교는 그 후 명칭이 바뀌었으나, 헌병 병과의 교육과정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헌병 하사관 교육 수료 기수(期數)는 현재 1007기에 이른다.
1000기가 넘은 헌병학교 기수 가운데 7기생의 특수성은 부산이란 단일 지역 내 12개 중학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단일 병과, 동일 기수의 학도병으로 동시에 참전했다는 점으로 이는 전무후무한 사례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이들은 '헌7학병동지회'라는 이름으로 남다른 유대와 결속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00년 회원들의 자비로 부산 어린이대공원에 건립한 '헌7학병 1661명 6·25 참전기념비'에는 헌병학교 7기 수료자 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해마다 이 기념비 앞에서 6·25 기념행사를 거행하며 헌7학도병의 내력을 알리고, 젊은 세대에게 조국 수호의 숭고한 정신을 고취하는 데 일조해 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기념비 앞에서 헌7학도병의 참전 63주년을 기념하고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행사를 거행한다. 63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 17~19세 홍안의 소년들은 이제 80~83세 백발 노골이 되었고, 옛 학우이자 전우의 80% 이상이 타계했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농경시대에서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시대로 이행했다.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 헌7학도병 1661명도 호국의 역군이었음은 자각하고 자긍할 만하다. 소년에서 백발까지 평생을 함께한 헌7학도병 동지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입력 2013.06.2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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