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 둘리가 어느덧 이립(而立·30세)의 청년이 됐다. 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처음 세상과 만난 게 1983년 4월이었다. 30년 동안 둘리는 만화책, TV, 영화, 뮤지컬, 캐릭터 상품으로 어린이·청소년 세대와 끊임없이 호흡해왔다.
둘리의 진짜 나이를 묻자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는 "셈법이 복잡하다"며 "그냥 영원한 아기공룡으로 보라"고 했다. 1억년 전 태어났으니 나이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하다는 설명이었지만 둘리 탄생 30주년이 반갑지만은 않다는 투였다.
"뭐든지 오래되면 구닥다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캐릭터도 나이를 먹으면 신선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둘리 탄생 30주년도) 강조할 게 아니라고 봤어요. 아무도 모르게 넘어가려 했죠."
김 작가는 외모부터가 '영원한 청년'을 연상시켰다. 떡 벌어진 어깨, 잘 발달한 가슴 근육, 울퉁불퉁한 팔의 굴곡이 '쫄티(몸에 딱 붙는 티셔츠)'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잇살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아침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한다"고 했다. 한때 별명이 '김 파마'였을 만큼 풍성했던 파마머리가 반백의 스포츠 머리로 바뀐 것 정도가 그의 나이(63세)를 가늠케 했다.
2003년엔 대학 신입생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기기를 만화 제작에 응용하는 기법을 배우려고 쉰셋의 나이에 인덕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아들·딸뻘인 학생들과 후배 만화가 이진주 교수('달려라 하니' 작가)의 강의를 듣는 모습은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남들 같으면 손자를 봤을 나이지만 그에겐 늦둥이 딸(10세)이 있다. 1996년 파리 여행에서 만난 류미희(44)씨와 결혼해 낳은 딸이다. "당시 전 애 딸린 46세 이혼남이었는데 27세 처녀인 와이프는 제가 좋다더군요. 전 좋았지만 와이프 집에서 난리가 났죠.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인데 오죽했겠어요."
요즘 그는 겨울방학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인 극장판 애니메이션('방부제 소녀들의 지구 대침공') 준비로 여념이 없다. 김 작가는 "둘리와 친구들이 집을 나간 길동이를 찾는 과정에서 지구를 '접수'하러 온 외계인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라며 "환경보호 메시지를 살짝 녹였다"고 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딸 때문이다. "딸이 지금 캐나다에 있는데 요즘 개발이 한창인가 봐요. 딸이 '아빠, 오늘도 나무가 잘렸어', '늑대가 안 보여' 이래요. 극장판이 마무리되면 환경파괴로 사라져버린 요정 얘기를 그려볼까 해요."
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성인용 에로 만화를 꼽았다. "인간이 가진 성적 판타지를 끄집어 내고 싶어요. 둘리 하기 전에 주간여성이란 잡지에 '신인 부부'라는 성인만화를 연재하기도 했고요. 그보다 좀 더 노골적인 걸 그리고 싶어요. 와이프가 '그런 만화 그리려면 필명을 따로 만들라'고 하지만 언젠간 그리게 될 거예요."
30년간 김 작가가 이룬 성취는 결코 적지 않다. 둘리가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으면서 '만화는 불량한 것'이란 사회적 편견을 깼고, 일본 만화 일색이던 국내 만화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1995년 김 작가의 '둘리나라' 설립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캐릭터 시장을 일으켜 세웠다. 이후 '뽀로로' '폴리' '타요' '코코몽' 등 둘리의 '동생'들이 줄줄이 뛰어들며 이 시장은 연간 8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둘리의 '롱런' 비결을 묻자 김 작가는 "나도 어떻게 지금까지 왔는지 궁금하다"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촌스러울 정도로 한국적인 정서 덕분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만화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고, 둘리와 친구들은 숟가락·젓가락으로 된장국과 라면을 즐겨 먹는다. 김 작가는 "한국만화의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주인공들이 스파게티와 빵 먹는 장면을 원했던 정부에서 둘리가 너무 한국적이라며 지원을 꺼릴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 둘리의 고향 쌍문동에선 '둘리 뮤지엄' 공사가 한창이다. 쌍문동은 김 작가가 경상대 축산과에 다니다 무작정 상경해 둘리 캐릭터를 구상한 곳이기도 하다. 둘리 탄생 20주년이었던 2003년 도봉구는 성인이 된 둘리를 위해 명예 주민증을 발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 박물관에 성인 만화도 전시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만화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그의 꿈은 뭘까. 김 작가의 답은 소박했다. "딸에게 선물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