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민 카림루가 맡은 팬텀(왼쪽)과 장 발장.

3일 오후 8시 이화여대 삼성홀에 배우 라민 카림루(35)가 수줍게 웃으며 등장했다. 여성팬들의 환호로 객석은 떠들썩했다. 블랙진에 셔츠 단추 4개를 푼 그가 '레미제라블' 전투 장면의 '집으로(Bring Him Home)'를 부르기 시작하자, 텅 빈 무대에 혁명의 포연이 자욱하게 깔리듯 주위가 숙연해졌다. 뮤지컬 심장부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의 주역 '팬텀(phantom·유령)'과 '레미제라블' 주역 장 발장을 연달아 맡은 스타답게 카리스마가 빛났다.

이날 무대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내한 뮤지컬 콘서트. 공연에 앞서 지난 1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난 카림루는 "한국 팬들이 크레이지(crazy·열정적)하단 얘기를 많이 들어 가슴이 설렌다"고 했었다.

이란계 캐나다 배우인 카림루는 국내 뮤지컬 팬들사이에서 이미 스타다. 그가 '팬텀'으로 출연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공연이 영화와 DVD로 널리 알려지면서 인기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3~4일 서울 콘서트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배우 브래드 리틀이 힘이 넘치고 섹시한 팬텀이라면, 카림루는 모성애와 연민을 자극하는 애절한 팬텀이다. 2007년 9월 불과 29세에 웨스트엔드에서 정식 팬텀으로 데뷔한 그의 연기는 "20년 넘은 작품에 새 에너지를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팬텀만 해봐도 뮤지컬 배우로서는 엄청난 행운. 그런데 카림루는 2011년 11월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까지 맡았다. 2011년 10월 2일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공연 당일, 세계 최고의 뮤지컬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싫다'고 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거듭된 권유에 장 발장이 된 그는 "원작을 읽어보니 책장마다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넘쳤다"며 "매킨토시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과‘레미제라블’의 장 발장을 모두 해본 라민 카림루는“다른 사람으로 사는 게 좋아서 가수로서보다 배우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장 발장과 팬텀 중에서는 팬텀이 더 어려웠다고 했다. "팬텀은 몸 연기가 힘들다. 드라이아이스를 많이 써서 바닥이 미끄럽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 있어 노련해야 한다." 그는 "25주년 공연을 끝내고 '다시는 팬텀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역할을 해봤다는 자만에 사로잡히면 배우로서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테니까"라고 했다.

▷라민 카림루 내한 공연, 5일 광주문화예술회관대극장 1600-4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