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 전(前)국정원장이 취임 직후 ‘손볼 사람’들을 추려 삼청교육대식(式) 얼차려 교육을 실시했다고 중앙선데이가 14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복수의 전직 국정원 근무자들의 증언을 익명으로 인용, 이렇게 보도했다.

“2009년 촛불 사태 이후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 간부 A씨는 돌연 국정원 산하 정보대학(현재 정보교육원) 입교를 지시받았다. 가보니 100여 명이 모였는데 인적 구성이 묘했다. 대부분 2~4급 간부들이었고 그중엔 입교 예정자 외에 ‘근무 태만자’ ‘물의 야기자’ ‘특이 동향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있었다. 특이 동향자들은 ‘정치범’이라고도 불렸다. A씨는 “이명박 정권이 손본 사람들”이라며 “노무현 정권과 밀접했던 간부와 특정 지역 출신이 많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내곡동 안팎에선 이 교육을 ‘국정원 삼청교육대’라고 수군거렸다.

교육 내용도 특이했다. A씨는 포항에서 2주간 해병대 교육을 받았다. 50 가까운 나이, 땡볕 퍼붓는 뻘밭에서 헉헉거리며 다른 고위 간부들과 해병대 고무 보트를 머리에 이고 기었다. 그보다 더 고위직, 더 연로한 간부들에게 모욕적인 일도 벌어졌다고 그는 말한다. 역시 정보대학에 긴급 입교 조치된 B씨는 “공수 훈련도 받았다”고 했다. 개중엔 ‘수양록’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 중 여럿이 이런저런 이유로 내곡동을 떠났다고 했다. A·B씨는 모두 “수치스럽고 모멸감이 든다”며 말을 이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간부교육은 늘 있는 것이며 강도 높은 내용도 포함된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때 국정원 고위 간부였던 K씨는 “정권 교체 뒤 정신교육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교육을 마친 뒤 대부분 현업에 복귀했다”고 말했다.

중앙선데이는 “이 ‘국정원 삼청 교육대’는 ‘당한 이들’에겐 국정원이 내부 정치 보복으로 중립성을 스스로 해치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단면으로 꼽힌다”며 “김대중정부 때인 1998년 4월 1일 ‘재택근무’를 명령하는 방식으로 500여 명을 축출한 ‘안전기획부 대학살’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당시 안기부를 나온 직원들은 “경상도 출신 70%가 쫓겨났다”고 말한다. 이명박정부도 김대중·노무현의 소위 ‘진보정부’에 대해 손보기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정치 중립’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표방하지만, 원 원장은 취임 직후 2~5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새로 팀장 제도를 운영하면서 정치색을 짙게 했다고 한다.

2급 고위 간부가 4~5급 팀장 밑으로 들어가는 일이 꽤 있었다는 것. A씨는 “국내·해외 부서를 막론하고 참여정부와 가까웠거나 특정 지역 출신 등 ‘찍힌 사람’들이 대상에 많이 들어갔다”며 “어떤 이들은 1~2년 버텼지만 사표를 던진 이도 많았다”고 말했다.

국정원 출신 B씨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전에는 인사위 검증, 3심제, 몇 배수 선정 등을 통해 압축된 명단을 대상으로 간부 인사를 했는데 원 원장은 그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사 전횡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는 ‘심복’이란 이유로 봐주고 반면 업무상 실수나 명령 위반 같은 중대하지 않은 경우인데도 가차없이 면직시켜 불만이 많았다”고 주장하며 “이들 중 일부는 소송 중”이라고 말했다.

전·현직 간부들에 따르면 청와대마저 원 원장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원 원장을 물러나게 하려는 시도가 두 번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워낙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어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전직 고위 간부인 K씨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원장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은 한국 만의 특성이 아니다. 전 세계 정보기관의 수장도 정치적 이유로 교체된다”며 “과거에 비해 국정원은 달라졌다. 야당을 탄압하거나 정치 판세를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업은 국정원장이 독주하고 그 아래 간부와 직원들이 줄을 서는 내부 구조에서 정치적 중립은 기대하기 힘들다.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원장 권력의 통제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