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 아틀리에는 기자들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벼랑 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그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1920년대, 비행기 설계사의 삶과 사랑을 그린 애니메이션이었고,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직업 때문에 한국에서는 개봉도 전에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일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아야했다.
지난 26일 일본 도쿄도 코가네이시 니바라키 아틀리에서 '바람이 분다'의 제작자이자 오랜 동료 스즈키 토시오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국에서의 그런 상황을 전해 들은 듯,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기자단을 맞이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바람이 분다’는 1920년대 살았던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1982)의 일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설가이자 시인 호리 타츠오(1904-1953)의 동명 소설 속 로맨스를 하나로 버무린 작품.

그는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자 가미가제 특공대가 사용한 제로센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호리코시 지로에 대해 “실제 제로센 비행기는 구식이어서 큰 역할을 못했다”며 “지로는 전쟁 후에도 회사에 있었기에 큰 발언을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대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르다고, 잘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열심히 살아갔기에 더 비참했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지로가 설계한 비행기 1만 대 이상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쓰였는데 '무조건 열심히 살아 왔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며 "내 경우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았으면 하는 바람에 토토로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TV 앞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자신의 예를 들며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바람이 분다' 속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순수한 목적이 아닌 전쟁에 쓰인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과 갈등을 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국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염려를 표하며 "이번 작품처럼 히노마루(일본의 상징, 국기)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작품이 없다. 그런데 거기에 나온 히노마루가 붙은 비행기들은 다 추락하게 된다. 그 속에 여러 가지 말들, 생각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이번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표현해 내고자 하는 부분을 명확히 했다.

뿐만 아니라 거장은 민감할 수 있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최근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발간되는 소책자 '열풍'에서 아베 일본 총리의 헌법 96조 개정을 비판했던 것에 대해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 생각에 대해서는 변함없다. (헌법을 바꾸면) 이 시대가 더 위험해질 수 있고, 시대가 움직이고 있기에 그걸 좋게 만들 수도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1989년도에 버블이 붕괴되고 같은 시기에 소련도 붕괴됐다. 그 시기 일본인들은 역사 감각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무라야마 담화'(1995년 당시 일본 무라야마 총리가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 아베 총리는 최근 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의지가 없다고 밝혔다)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걸(역사의식을) 잃어버리면 그 나라의 균형이 깨진다”고 자국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부재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이미 일본이 청산을 했어야 한다. ‘하시모토 담화’라는 식으로 또다시 오르내리는 것은 굴욕적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한다”며 “이렇게 역사 얘기를 해왔어야 하는데 그 동안 일본은 경제 얘기만 쭉 해왔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만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경제가 안 좋으면 전부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됐다”고 일침을 놓았다.

거장은 거장 다웠다. 자국에서 다소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정치적 발언들도 서슴치 않고, 단호하고 소신있게 전했다. 한국의 기자들 앞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한 발언이라기 보다는 현재 일본의 상황에 대해 진정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는 마음이 전해져 더욱 눈길을 끌었다.

대원 미디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