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민간항공기구(ICAO) CAT-3B 등급을 갖춘 인천공항 1·2·3 활주로(오른쪽부터). 나란히 뻗어있는 평행활주로로, 끝지점 안전지대도 넉넉하다. photo 인천공항

지난 7월 24일 찾아간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이날 새벽 뿌린 장맛비로 시야가 뿌연데도 여객기들은 여객터미널 옆 3개 활주로를 이용해 굉음을 내뿜으며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인천공항 김한영 홍보팀장에 따르면 하루 710대의 항공기가 24시간 3개 활주로를 이용해 뜨고 내린다. 인천공항 활주로에 대한 조종사들의 만족도도 상당하다. “인천공항은 방파제로부터 활주로까지 거리도 넉넉해 조종사들이 집에 온 것처럼 포근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이다.

악명 높은 활주로를 가진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착륙사고를 일으켰던 아시아나항공기(OZ214)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난 7월 6일 승객과 승무원 307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이 여객기는 7월 7일 새벽(한국시각) 샌프란시스코공항 28L 활주로 앞 방파제를 들이받고 산산조각났다. “인천공항처럼 샌프란시스코공항의 활주로가 좋았다면 애먼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인천공항이 2008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제3활주로는 특히 남다르다. 제3활주로는 인천공항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서쪽에 있는 길이 4000m, 폭 60m의 장대형이다. 1·2 활주로(3750m)보다 250m가량 더 긴데, 에어버스 A380 ‘수퍼 점보’ 같은 초대형 여객기가 뜨고 내릴 수 있다. 제3활주로는 2008년 인천공항 2단계 확장사업 끝에 준공됐다. 같은 해 1월 비행검사에 합격한 후 4000시간의 항행안전시설 무중단 운영을 달성한 끝에 ‘CAT-3B’(브라보) 등급을 받았다.

‘CAT(Category)’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권고로 매기는 활주로 성능 등급의 일종이다. 인천공항이 획득한 ‘CAT-3B’는 사실상 최고 등급이다. CAT-3B 위에 ‘CAT-3C’(찰리) 등급이 있지만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국토교통부 공항안전환경과 김세연 사무관은 “CAT 등급은 지상장비와 조종사의 자격, 항공기의 성능을 종합해 결정하는데, CAT-3B 활주로는 활주로가시거리(RVR) 50~175m만 확보되면 착륙이 가능하다”며 “시정거리 0m에서 착륙가능한 CAT-3C 공항은 전 세계에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김은별 운항계획팀 차장에 따르면 제3활주로를 비롯한 인천공항의 모든 활주로는 CAT-3B 등급을 부여받았다. 75m 시계만 확보하면 자유롭게 뜨고 내릴 수 있다. 전천후 이착륙이 가능한 만큼 비행기의 결항과 연착도 적다. 김은별 차장은 “사실 장비로만 보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수준인 50m 시계 확보만 이뤄져도 이착륙이 가능하다”며 “다만 지상근무자들의 작업 여건을 고려해 75m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 활주로 항공등화 2만7000개, 500t 이상 항공기 지나가도 깨지지 않아

활주로 주위에 포진한 각종 항행안전시설은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다. 항행안전시설은 유무선 통신과 불빛·색채·형상 등으로 항공기에 거리정보와 방위각도 등을 제공해 이착륙을 돕는 설비다. 전파로 항공기 이착륙을 유도하는 계기착륙시설, 항공기 위치를 탐지하는 레이더, 항공기와 관제탑 간 통신을 담당하는 관제통신시설, 불빛으로 항공기의 항행을 돕기 위한 항공등화시설 등이 대표적이다.

활주로 주위로 촘촘히 박힌 인천공항의 항공등화(燈火)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항공등화는 조종사가 육안(肉眼)으로 이착륙할 때 불빛으로 안전한 이착륙을 돕는 항행안전시설의 핵심이다. 인천공항 1·2·3 활주로 주위에는 무려 2만7000개의 항공등화가 있다. 활주로 중앙선과 양옆에는 이들 등이 15m 간격으로 박혀 환한 불빛을 뿜어낸다. A380과 같은 500t 이상의 초대형 항공기가 밟아도 깨지지 않을 만큼 견고히 설계됐다. 이들 등화는 정전이 돼도 모두 4개의 배변전소에서 공급되는 고품질의 전력으로 꺼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계기착륙장치(ILS) 역시 2001년 인천공항 개항 이래 11만여시간째 무중단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인천공항을 향한 항공기의 착륙 때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터진 사고 때 자동착륙장치의 일종인 ‘글라이드 슬로프’가 꺼져 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인천공항 한대희 계기착륙팀장에 따르면, 활주로에 비행기 메인 랜딩기어(뒷바퀴)가 닿는 지점과 끝지점에 있는 2개의 오렌지색 안테나는 비행기가 내릴 때마다 무간섭 전파를 쏘아댄다. TV 안테나처럼 생긴 시설에 오렌지색을 칠해둔 까닭은 지상작업자들이 건들지 말라는 뜻이다.

한대희 팀장은 “메인 랜딩기어가 닿는 착륙지점의 안테나는 착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방향각도 3도를 맞추는 전파를 쏘고, 활주로 끝의 안테나는 비행기의 중심선을 유지하는 전파를 내보낸다”고 말했다. 비행기에서는 이 두 개 전파를 접수하고 인식해 정확히 3도의 착륙각도로 활주로에 안착하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는 조종사 2명이 비행 중 돌연사해도 계기착륙장치를 통해 착륙시킬 수 있다”(항공대 출신 관계자)는 우스갯소리는 이 때문에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도 CAT-3B 등급의 활주로를 갖춘 공항은 인천공항이 유일하다. 국토교통부는 ICAO의 규정에 맞춰 전국의 15개 공항을 대상으로 활주로 시설, 항공등화, 구조 및 소방장비, 운영절차 등을 종합평가해 매년 ‘공항운영증명’을 실시한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공항안전운영기준’에 따르면 공항활주로 등급은 크게 활주로가시거리(RVR)에 따라 CAT-1(550m), CAT-2(300m), CAT-3(175m)으로 나뉜다. CAT-3의 경우 착륙결심 고도와 활주로 시계범위에 따라 재차 CAT-3A, CAT-3B, CAT-3C로 세분된다.

인천공항은 1·2·3 활주로 모두 CAT-3B 등급을 부여받았다. 김포공항도 CAT-3A(알파) 등급 활주로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CAT-1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인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국내 14개 지방공항은 모두 CAT-1 등급”이라며 “15개 공항 중 울산, 광주, 포항, 사천, 양양은 글라이드 슬로프가 아예 없다”고 지적했다.

CAT-3 등급 활주로가 드문 까닭은 막대한 시설투자비용 탓이다. 국토교통부 운항정책과 최승연 사무관은 “CAT 등급이 올라가려면 시설투자비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도 CAT-3B 등급의 공항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미 연방항공청(FAA)에 의하면 일본에서 CAT-3 활주로를 확보한 곳도 나리타공항(도쿄), 신치토세공항(삿포로) 두 곳뿐이다. 간사이공항(오사카)과 하네다공항(도쿄)은 CAT-2에 머물렀다. 중국도 평가대상 5개 공항 중 첵랍콕공항(홍콩) 한 곳만 CAT-3 등급을 받았고, 수도공항(베이징)과 푸동공항(상하이)은 CAT-2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CAT-3B 등급의 인천공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공항 중 하나”란 것이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문우춘 교수의 말이다. 국토교통부 운항정책과에 따르면 사망 사고가 난 샌프란시스코공항의 28L 활주로는 CAT-1 등급에 불과했다. 550m 이상의 활주로가시거리(RVR)를 확보해야 하는 수준으로 인천공항에 비해 7배 이상의 시야를 요구하는 셈이다.

“항공교통량이 많은 샌프란시스코공항 정도면 적어도 CAT-2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한국항공대 송병흠 교수의 지적이다. 활주로 길이도 문제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대개 더 긴 활주로 길이를 요구한다. 여름철 기온이 올라가면 활주로 부근의 공기밀도가 떨어져 비행기가 빨아들이는 공기량과 압축량이 줄어들어 더 긴 활주거리를 필요로 해서다. 사고가 터진 샌프란시스코공항 28L 활주로의 경우 길이가 1만602피트(약 3231m)로 인천공항의 3활주로(4000m)는 물론 1·2 활주로(약 3750m)보다도 짧았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만든 활주로 끝 안전지대는 인천공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아시아나항공 214편이 충돌 착륙한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28L 활주로(왼쪽 아래). 인천공항과 달리 교차활주로로 설계됐고 활주로 끝 안전지대가 협소하다. photo 로이터

◇ 서울 도심과 거리 48km, 활주로 간의 간격 414m

1·2·3 활주로가 모두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뻗어 있는 평행활주로도 인천공항의 돋보이는 부분이다. 샌프란시스코공항의 경우 활주로가 십자 형태로 겹치는 교차활주로다. 교차활주로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약점도 적지 않다. 2007년 5월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는 각각 이륙과 착륙을 하던 리퍼블릭에어라인과 스카이웨스트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충돌할 뻔한 ‘니어미스(Near Miss)’ 사고가 터진 적도 있다.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송병흠 교수는 “평행활주로는 바람 방향을 남북이나 동서 두 방향만 고려하면 되지만, 교차활주로는 동서남북 4방향을 모두 신경써야 한다”며 “활주로가 교차돼 있다 보니 항공기 궤적이 가까워지는 니어미스 사고가 날 가능성도 평행활주로보다 더 높다”고 지적했다.

활주로 간 간격도 문제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동쪽에 나란히 뻗어 있는 인천공항 1·2 활주로의 경우 간격이 414m에 달한다. 나란히 놓여 있는 활주로에서 두 대의 비행기가 동시에 뜨기 위한 간격인 760m에는 못 미치지만, 샌프란시스코공항은 활주로 간 간격이 그 절반 정도인 230m에 불과하다.

더욱이 인천공항은 국내 유일의 순수 민용공항으로 출범해 주변에 산과 같은 장애물도 없다. 인천공항 활주로는 인천 앞바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남북 방파제로 막고 조성한 매립지에 놓았다. 대개 군공항으로 설계된 국내 다른 공항들이 보안 목적상 산을 끼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동쪽 영종도 최고봉인 백운산이 256m, 서편의 용유도의 오성산이 172m에 불과하다. 공항 서남쪽 무의도의 호룡곡산도 242m에 그친다. 그나마 문제가 되는 부분(오성산)은 절토를 단행해 깨끗하게 밀어 버렸다.

반면 사고가 난 샌프란시스코공항 서북쪽에는 샌브루노산(402m)이 있다. 1964년 12월 샌프란시스코공항 28번 활주로를 뜬 플라잉타이거항공(현 페덱스) 소속 화물기가 이륙 직후 이 산과 충돌하기도 했다. 2002년 4월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여객기가 착륙 중 부산 김해공항 북쪽의 돗대산(380m)을 들이받고 추락한 것과 같다. 산을 피해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더 높은 상승각도와 강한 추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비행기의 최대 이륙중량보다 더 낮게 짐과 승객을 태워야 해 항공사로서도 영업손실이 상당하다.

인천공항과 서울 도심 간 48㎞의 거리도 안전성 측면에서는 장점이다. 시내와의 거리가 21㎞에 불과한 샌프란시스코공항의 경우 활주로 소음문제로 이착륙 절차가 까다롭다. 한국항공대 송병흠 교수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공항은 태평양에 면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만(灣)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태평양 쪽에서 날아오는 항공기는 기수를 급격히 틀어 착륙해야 한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샌프란시스코공항을 “조종사들이 짧은 거리에서 급히 각도를 줄이면서 착륙하라는 지시를 많이 받는 공항”으로 혹평했다.

만에 하나 터질 활주로 화재사고에도 대비해 인천공항 소방대는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공항 사고 때는 현지 공항 소방대의 명백한 과실로 안 나와도 될 사망자(예멍위안·16)가 나왔다. 인천공항은 최고 등급인 소방등급 10등급을 확보하고 있다. 인천공항 소방대는 항공구조소방차 7대를 비롯해 26대의 각종 소방·구급차량을 확보하고 있다.

1·3 활주로 양옆에 자리한 인천공항 소방대에는 208명의 대원이 3조 2교대로 24시간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비상사태가 터지면 공항 전 지역으로 3분 이내 출동이 가능하다. 활주로 인근에는 이들이 모의훈련을 하는 모형비행기도 놓여 있다. 소화액도 ICAO 권고량에 비해 400%가량 넉넉하게 비축하고 있다. 1만L의 소화액을 탑재하는 소방차는 1분30초 안에 소화액을 모조리 뿜어낸다.

인천공항 윤용규 안전소방팀 차장은 “4000L 정도 소화액을 싣고 다니는 일반 소방차에 비해 펌프 성능이 2~3배가량 더 막강하다”며 “수초~수분 만에 생사(生死)가 판가름나는 항공사고의 특성상 일반 소방차보다 적재용량과 펌프성능이 훨씬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대희 계기착륙팀장은 “많이 알면 알수록 아무 공항이나 이용 못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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