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밤 서울 마포구 홍익대 거리에 있는 C클럽 앞. 호객행위를 하는 김지훈(가명·21)씨는 다짜고짜 반말을 던졌다. “클럽 안 가? 부킹 전문 클럽인데.” 10대는 요즘 어디서 노는지 물었더니 “미성년자는 왜 찾는데? 몇 살이야?”라고 되묻는다. 대화를 나누다가 기자라고 밝히자 슬그머니 존댓말을 했다. “뭐가 궁금하신데요?”
김씨도 종종 클럽에 다닌다. 주 목적은 ‘맘에 드는 여자 전화번호 따는 것.’ “뭐, 빤하잖아요. 번호 따서 자러 가는 거죠.” 김씨가 처음 성관계를 가진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그것도 모텔에서. “모텔이 만만하더라고요. 신분증 검사요? 허름한 모텔이나 여관은 신분증 검사 잘 안 해요. 검사하면 민증 위조한 거 보여주면 되고.” 예전에는 아는 형의 신분증을 대신 들고 가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모텔 말고 또 어디 가요?” “모텔 아니면 집으로 많이 가죠. 부모님 안 계시는 낮이나 밤에. 할 데는 많아요. 없어서 못하나? 주차장에서도 해봤고. 야동 안 봤어요? 놀이터에서도 하던데.”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김씨는 거침없었다.
김씨의 말처럼 10대들이 성관계를 갖는 장소는 다양했다. 공개된 곳만 아니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모텔은 10대가 주로 이용하는 장소다. 지난 7월 10일 일어난 경기도 용인 10대 여학생 살인사건도 10대 남녀가 모텔을 이용하면서 벌어졌다. 대실을 할 경우 비용이 3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신분증 검사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위조 신분증으로 얼마든지 ‘뚫을 수(통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대가 어떻게 모텔을 들어가고 클럽을 뚫을 수 있는 걸까? 대부분은 주민등록증을 위조하는 방법을 쓴다. 주민등록증 위조는 출생연도를 조작하거나 사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중고시장에 관련 내용을 검색하니 출생연도를 조작할 때 쓰는 스티커를 5000원에서 1만원에 파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방법은 사진을 주민등록증 위에 덧붙이고 본드를 바른 다음 사포로 밀어 매끈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자세히 보면 티가 나지만 얼핏 봐서는 속기 쉽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청소년 클럽 ‘틴플(Teenage Playground)’ 사장 박모씨는 “요즘에는 주민증을 위조해서 홍대에 있는 성인 클럽에 가는 10대도 많다”며 “일부 클럽은 위조한 걸 알면서도 입장시키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C클럽에 놀러온 한 20대 남성도 “스스로 미성년자라고 말은 안 하지만 민증 위조해서 들어오는 학생이 있다”고 말했다.
10대의 문제적 공간으로 거론되는 장소는 멀티방, 룸카페, 청소년 클럽이다. 멀티방은 노래방·PC방·비디오방 등의 기능을 한데 모은 공간으로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매트리스와 별도의 화장실까지 갖춘 곳도 있다. 룸카페는 멀티방과 기능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분위기가 멀티방보다 개방적이다. 천장이 뚫려 있고, 방문 대신 커튼이 달려 있다. 청소년 클럽은 춤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놀이 공간으로, 술은 팔지 않는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의 성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성관계를 위한 즉석 만남의 공간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0대가 성관계를 하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은 멀티방이었다. 지난 7월 2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에 있는 한 M멀티방에 들어갔다. 3.3㎡ 남짓한 방에 70인치 정도 되는 TV와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들이 보였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복도로 난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자 완전한 밀폐 공간이 됐다. 이용요금은 1인당 1시간에 5000원. 2인이 2시간을 머무르면 2만원꼴이다. 3만~4만원 정도 하는 모텔 대실료에 비해 싸게 먹히는 탓에 10대들이 자주 오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작년 8월부터 청소년의 멀티방 출입이 금지됐다. 취재 중 만난 19살 고등학교 남학생은 “친구들이 (성관계를 위해) 멀티방을 자주 갔었는데 출입이 금지되면서 요즘은 룸카페를 간다더라”라고 말했다.
멀티방에 이어 찾아간 종로의 한 룸카페는 칸막이로 방이 구분돼 있지만 멀티방보다 은밀함은 덜했다. 연령제한도 없다. 10대로 보이는 커플도 몇몇 보였다. 알바생(21)에게 일하면서 민망한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안에서 TV소리를 크게 틀어 놓으면 뭐하는지 밖에서는 잘 안 들려요. 커튼을 열어 볼 일도 없고.” 알바생은 일한 지 두 달째라고 했다. 룸카페는 생각보다 안락했다. 맨발로 편히 쉴 수 있고, 1만6000원만 내면 두 사람이 3시간 동안 각종 음료와 과자, 빵 등이 있는 샐러드바를 이용할 수 있다.
같은 룸카페도 구조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신촌에서 유명한 P룸카페의 경우 입구에 서서 30분을 지켜보니 8커플이 들어갔고 4커플이 나왔다. 모두 커플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방이 꽉 차서 대기를 해야 한단다. 반면 근처의 H룸카페는 한산했다. 두 룸카페는 구조가 달랐다. P룸카페는 멀티방처럼 방마다 문이 달려 있었고 H룸카페는 종로의 룸카페처럼 천장이 뚫려 있는 구조였다. H룸카페 사장은 “개방형 룸카페는 장사가 잘 안 돼서 근처 몇 군데는 문을 닫았다. 밀폐형 룸카페가 인기가 더 많은 이유는 단둘이 은밀한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청소년 클럽 틴플이다. 작년 여름에 처음 생긴 틴플은 한때 1500여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청소년 탈선의 중심지로 알려지면서 발길이 뚝 끊겼다. 22세까지만 입장 가능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기자는 들어갈 수 없었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클럽에서 학생 두 명이 나왔다. A학생은 19살로 수원에 살고 있고, B학생은 18살로 이태원에 산다고 했다. 둘 다 춤에 관심이 있어서 한 달에 네 번꼴로 틴플에 온다. 클럽에 오는 이유가 춤뿐이냐고 물으니 “여자 만나러 오는 애들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여자를 만나서 가는 곳은 주로 노래방이나 모텔이다. 모텔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3만원밖에 안 해서 괜찮다”며 “술집에 가면 민증 검사를 하는데 모텔은 검사를 안 해서 훨씬 편하다”고 답했다.
이틀 동안 10대의 유흥문화를 찾아 헤맸지만 발견한 건 20대 문화에 속한 10대의 흔적이었다. 10대들이 손을 뻗으면 그들의 문화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전에 봉쇄됐다. 멀티방이 그랬고, 청소년 클럽이 그랬다. 튕겨 나간 10대들은 모텔로 향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텔은 10대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