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협회 이사이자 소설가협회 회원인 엄상익(59·사진) 변호사는 법조계를 소재로 한 팩션(faction·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소설의 한 장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엄 변호사는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 사건'의 범인 윤모(51)씨의 항소심 변호를 맡았다.
엄 변호사의 의뢰인이었던 윤씨는 영남제분 회장 전 부인 윤길자(68)씨의 조카로 여대생 하지혜양을 2002년 3월 청부 살해한 인물이다. 엄 변호사는 사회 이목을 끈 사건에 대해 미리 의뢰인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발표해도 좋다"는 '특별 각서'를 받았는데, 당시 윤씨에게도 이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
엄 변호사는 2006년 '여대생 살해 사건'이라는 소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이듬해 출간했다.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해 500권을 직접 구입해 출판비를 보상해야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근 윤길자씨의 형 집행정지 논란이 일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엄 변호사에게 줄소송·고소가 잇따르고 있다. 영남제분 배비용(60) 대표와 윤길자씨의 '판사 사위' 김모(40) 변호사는 지난달 19일 손해배상 청구소송(5000만원)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달 초에는 청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살해범 윤씨가 서울중앙지검에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영남제분과 사위 김씨는 소장에서 "엄 변호사가 블로그에 글을 실어 사회적 명성과 신용이 훼손됐다"며 "우리는 이 사건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어떤 관련도 없는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위 사정을 종합하면 누구인지 특정이 된다. 이로 인해 사위 김씨는 직장에서 정상 업무를 볼 수 없어 수차례 이직했고, 영남제분은 매출 감소·주가 하락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살해범 윤씨도 "엄 변호사가 의뢰인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며 고소했다.
엄 변호사는 "집필 과정에서 제분회사를 화장품 재벌회사로 바꾸고 판사 사위의 이름은 다른 법조인의 실명을 썼다"며 "소설 치고 모델이 없는 소설은 없다. 문학작품과 영남제분의 피해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윤길자씨의 전 남편인 류원기(66) 영남제분 회장도 자신을 비판한 네티즌 100여명을 부산경찰에 고소했다. 윤길자씨를 둘러싼 주변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속죄하고 있다", "침묵이 답"이라고 했으나 최근 들어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