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와 '웃기다'는 대체로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조합되면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그냥 웃음이 아닌, 폭소다. 꽃보다 예쁜 신보라가 전하는 똘끼 충만한 이야기.

김창렬과 신보라, 두 사람은 (이하 ) 무대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매주 황당한 곳에서 이별을 통보하는 '생활의 발견' 코너에서다. 그 당시 김창렬은 DJ DOC의 이미지를 살려, 폭력남으로 변신해 신보라를 못 잊겠다며 쫓아다녔다. 신보라에게 보낸 '뿌잉뿌잉' 애교는 김창렬의 필살기.

우리 '생활의 발견' 시절 만난 적이 있죠? (정색) 제가 수전증이 있어서 손을 좀 떠는데, 오빠도 그때 저만큼 손을 떨었던 것 같은 기억이….
하하하 맞아요. 내가 워낙 연기를 잘 못하는데, 무대 위라 좀 떨렸어요. (웃음) 아뇨, 그래도 워낙 캐릭터가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신보라는 황당한 설정 속에서 더 없이 진지한 연기를 펼친다. 이 모습은 인터뷰에도 적용됐다. 신보라의 진지한 모습에 김창렬은 “아, 그게 연기가 아니고 진심이었구나!” 하며 놀랐고, 진지한 모습 중간중간 내비치는 황당한 모습, 똘끼 충만한 모습에 두 번 놀랐다.

신보라는 요즘 ‘뿜 엔터테인먼트’와 ‘전설의 레전드’ 두 코너에 출연 중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는 ‘느낌 아니까!’와 ‘잠깐만요, 보라 언니, 이것 좀 하고 가실게요~’의 유행어를 만들어낸 ‘뿜 엔터테인먼트’. 신보라는 이 코너에서 스태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콧대 높은 싱어송라이터를 연기한다. 소속사 대표와 대화 중 신보라는 스태프를 향해 “자기야, 내가 답답해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하면, 스태프가 “잠깐만요~ 보라 언니 선글라스 벗고 가실게요~” 하는 식이다.

"보라 언니, 이것 좀 하고 가실게요~" 하는 말투, 제가 라디오에서 쓰는 톤이었어요. 싼 티 나는 여자 목소리 흉내 낼 때요. 맞아요. 서비스업을 하는 분들이 자주 쓰는 톤이나 말투죠.(웃음)
요즘 '전설의 레전드'와 '뿜 엔터테인먼트'에서 또 인기를 얻고 있어요. 저보다는 코너가 인기 많아서요.(^^)
에이~ 보라 씨는 에서 가장 핫한 개그맨인데요. 그건 조금 지난 것 같고…. 전 지금도 좋아요. 사랑받는 코너를 함께하고 있고, 관객과 매주 만나고 있으니까요.
'보라 언니' 캐릭터처럼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요? 제가 연예인이 됐고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아는구나!' 하는 건 어르신들이 저를 알아보실 때예요. 많이들 알아봐주니 감사하죠.
감사하지만 가끔 유명세로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힘든 것보다는 제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연예인이 아닌 분이나, 연예인이어도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라면 더 불편하죠.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오늘은 제 아들하고 놀러왔으니까, 사진은 다음에 찍어드릴게요. 죄송해요." 그러고 그냥 놀거든요. 저도 정말 중요한 식사 자리나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식사 끝나고 해드려도 될까요?"라고 하는데, 죄송할 때가 많죠.
자, 그럼 '보라 언니' 캐릭터의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나올 때도 있나요? 스태프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거나…. 음… 그런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시청자들은 제가 멀끔한 모습으로 망가질 때 더 웃기 때문에 외모에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반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왕이면 한 번 더 드라이를 하자, 그러긴 하네요.
그럼 집 앞에 나갈 때도 화장해요? 전~혀. 화장은커녕 아예 못 알아보게 하죠!

신보라는 2010년 KBS 25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단 한 번도 하락세 없이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슈퍼스타 KBS'를 시작으로 '용감한 녀석들', '생활의 발견', '거제도' 그리고 '뿜 엔터테인먼트', '전설의 레전드'까지… 업앤다운이 심한 연예계에서 4년째 승승장구 중이다. 그 덕분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여자예능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인기의 시작은 예능 프로그램 이었다.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던 신보라 씨가 생각나네요. '개그맨이 노래를 이렇게 잘해?' 하고 놀랐는데. 개그맨 데뷔하고 한 달 후에 합창단 합격하고 오디션을 봤어요. 에 출연 중이었던 윤형빈 선배가 개그맨 후배들에게 모두 오디션을 보라고 했죠. 제가 노래를 했던 것을 동기만 알던 상태였는데, 합격이 된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녹화 날은 꿀맛 같은 시간이었죠. 막내라 일도 많이 하고 힘들 때라서요. 그래서 목요일만 기다렸던 것 같아요. 게다가 합창단으로 제 고향 거제도까지 다녀왔으니 여러모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죠.
아, 은 수요일 녹화죠! 네. 목요일이 더 기다려졌던 건 신인 개그맨으로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배우, 아나운서, 개그맨 선배님들…. 제 인간관계로는 만나볼 수 없는 분들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난 거죠. 굉장히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어요.
혹시 개그맨 이전의 꿈이 가수였어요? 아뇨. 가수의 꿈은 감히 못 꾸었던 것 같아요. 개그맨 하기 전에 가스펠 동아리(CCM 뮤지션 헤리티지 메스콰이어 3기 보컬 출신)에서 노래를 했는데도 왠지 저와는 먼 이야기랄까. 연예인이 되고 나서도, 시골에서 올라와서인지 마인드 자체가 그랬어요.
자신감이 없었군요? '노래 정말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지는 몰랐어요. 개그우먼이 노래를 하니까 새롭게 봐준 것 같아요. 합창단을 통해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구나'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도 개그맨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봐요? 개그맨이 되겠다고 결심한 게 대학교 4학년 1학기 마치고 휴학하고 나서예요. 그전까지 "보라는 뭐가 될 거야?"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서 그 생각을 휴학 전까지는 숙제처럼 미뤘던 것 같아요. 막연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는데 어느덧 취업이 현실이 된 거죠. 휴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저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한 것 같아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이제는 정말 숙제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반 년을 고민했어요.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뭐를 잘할 수 있을까?' 질문했죠.
그래서 어떤 답을 얻었나요? 생각해보니 제가 사람들을 웃길 때가 가장 행복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나 선생님 흉내 내고 축제 때 사회도 봤거든요. 지드래곤 모창도 하고. 그래도 거제도에서 자라면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서울에는 얼마나 많겠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어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아 공채시험을 볼 수 있었죠.
개그맨 시험은 얼마나 준비한 거예요? 3, 4개월 정도? 시험장에서도 저는 정말 안 웃겼어요. 아니, 못 웃겼어요. 심사위원들이 빵 터지지 않았어요. 동기들은 개그할 때 심사위원들이 막 웃었대요. 제가 개그를 선보였을 때는 심사위원들이 '쟤는 뭐지?' 하는 눈빛이었어요. 웃기지 않은데, 너무 뻔뻔하게 연기를 했고, 이력서에 있는 프로필도 너무나 개그와 먼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실크 남방에 면바지 입고(염색도 개그맨 돼서 처음 해봤어요)….
어떤 분이, 어떤 점을 좋게 봤어요? 이상득 작가님이요. '쟤 똘끼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떤 질문을 해도 제가 "네." 하면서 뻔뻔하게 하니까. 이를 테면 "모창할 수 있나?" 하면 "네. 비욘세 모창을 해보겠습니다." 했으니까요. 그것 자체가 반전이었던 것 같아요. '안영미 스타일이다, 똘아이 기질이 있다. 그게 있지 않으면 여기 와서 저렇게 할 수 없다….' 개그도 저희 학교 선생님 성대모사를 준비해갔거든요.
하하하. 하늘이 형 같네요. 하늘이 형이 가끔 단군할아버지 성대모사하고 그러거든요. 심사위원들이 당황할 만하네요. 거기서 큰 점수를 받았겠어요. 그전에 연기 공부는 좀 했고요? 교회에서 매년 성극이나 꽁트를 했어요. 주인공은 아니어도 마리아 역할도 했다가 이것저것 했죠. 그런 것들이 경험이 됐어요.
어렸을 때 꿈은 뭐였어요? 어렴풋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 없는데, 엄마 말로는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한 적도 있고, 가수가 될 거라고도 했대요. 근데 제 기억에는 없어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으니, 기자나 PD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쪽 공부를 하면서도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숙제처럼 했죠.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흥미가 안 생겼어요. 저는 대학에 가면 꿈이 생길 줄 알았어요. 대학 가도 다 똑같더라고요. 과를 선택했으니, 으레 이 방향을 가겠지 하는 생각만 있었죠. 사람들이 물어봐요. "기자 할 거야? PD 할 거니? 아나운서는 아니지?" 오히려 4년은 이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학창 시절, 반장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봤을 때는 공부 열심히 하는 성실한 아이였고, 친구들이 봤을 때는 웃기는 아이니까 만만하지 않았을까요.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정도 갔으면 공부 잘했겠어요. 학교 다닐 때 몇 등 했어요? 저는 딱 한 만큼 나오는 스타일이었어요. 모의고사보다는 내신이 좋았고요. 머리가 막 돌아가고 언어 센스가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공부해야 점수 나오더라고요.
개그맨들 보면 다 머리가 좋던데요? 지금도 그 부분에는 자신이 없어요. 제가 연기하고 코너를 살릴 자신은 없는데, 개그를 잘 짜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럼 선배나 동기들이 함께 하자고 하는 스타일인가요? 보라는 연기가 되고 캐릭터 잘 살리니까 같이 해보자, 하는 쪽이죠. 그 대신 아이디어는 조금씩 내요. 코너가 자리 잡고 나서 아이디어 내는 정도?
보라 씨는 대표 미인 아닌가요? 요즘은 예쁜 개그우먼들이 웃기기까지 하는 것 같아요. 보라 씨도 그렇고, 김지민 씨도 웃기고. 개그의 흐름이 바뀐 것 같아요. 저도 신기한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멀쩡한 외모에서 나오는 반전이 더 센가봐요. 시대 흐름이 멀끔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아요. 트렌드도 돌기 마련이니까요. 근데 솔직히 제가 안에 있어서 그렇지, 미녀과는 아닌 것 같아요. 선배님 (저 미녀과) 아니지 않아요?
음… 처음에 나왔을 때는 '개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예뻐지는 것 같아요. 개성이 있어 보였나요? 저는 사실 신인 때는 아무 캐릭터가 없었어요. 그게 엄청나게 스트레스였죠. '그렇게 원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잘못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멀쩡한데 웃기는 캐릭터도 없었고, 다른 동기나 선배들은 딱 보기만 해도 '아 저것 때문에 개그맨이 됐구나' 생각되는 사람들뿐이었으니.
하하하 딱 봐도 개그맨인 사람들이 정말 있죠. 김영희 언니는 사투리 연기, 아줌마 연기가 됐고, 송영길 오빠는 조물주가 개그하라고 창조한 분 같잖아요. 박성호 선배님, 오나미·박지선 선배…. 그 틈에서 '나는 무엇일까?' 고민을 했죠. 나는 어떻게 해서 웃겨야 하나? 저도 저에 대해 몰랐으니까요.
그럼 잘 풀리게 된 계기가 노래였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슈퍼스타 KBS' 코너를 통해 신보라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죠. '생활의 발견'을 통해 연기를 할 수 있었고요. '아홉시쯤 뉴스'에도 나왔지만 '생활의 발견'처럼 코너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가는 연기는 처음이었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을 통해 이슈가 되기도 했고요.
자신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군요. 선배님들 덕분이에요. '생활의 발견'은 김병만 선배가 아이디어를 줬어요. 선배는 제가 진지한 연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았나봐요. "보라야 너 진지한데, 그걸 생뚱맞은 곳에서 하는 걸 해봐." 그 이야기를 송중근 선배에게도 했어요. 그러다 "야 안 되겠다. 이리와." 하더니, 삼겹살집에서 쌈 싸먹으면서 개그를 짰죠.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어요. 같이 코너를 했던 선배님들 덕이에요. 제가 신인 때는 긴장을 많이 해서 장난도 못 치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 "보라는 너무 재미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를 발견해준 분들께 정말 감사하죠.

신보라의 별명은 신통닭. 닭을 무척 좋아해 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월급날 사들고 온 고소한 통닭 맛에 빠진 그녀는 “신이 닭이라는 동물을 창조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 정도면 치킨 CF 하나 찍을 만한데.

개그 말고 좋아하는 건 뭐가 있나요? 앞으로 성향이 바뀔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조용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정말 친한 사람 아니고는 많은 사람 만나고 오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에요. 집에서 혼자 음악을 즐기거나 치킨을 먹거나!
치킨이요? 네! 저는 하나님이 치킨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닭 다음에 돼지, 소! 찜닭, 백숙, 치킨…. 닭으로 요리한 것 정말 좋아해요. 아빠 휴대폰에 저를 '신통닭'으로 저장해두셨어요. 매달 25일(월급날)이면 아버지가 통닭 사주는 날이었죠.
닭 마니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가 있던데요? 개인적으로 '퍽퍽 살'은 좋아하지 않아요. 쫄깃쫄깃한 허벅지, 다리, 날개, 닭봉….
갈빗살도 맛있는데! 맞아요! 겉에 껍데기!
혼자 먹어요? 친한 사람들을 불러서 먹기도 해요. 친한 언니와 닭 궁합이 잘 맞아요. 언니는 퍽퍽살, 저는 쫀쫀한 살 먹으니까 서로 의 상하지 않죠. 내가 먹고 싶은 부위인데 다른 사람이 먹으면 속상하잖아요.
치킨, 하면 또 맥주잖아요. 술은 안 마셔요. 술은 할 줄 아는데 잘 안 해요.
혹시 술 마시고 실수한 적 있어요? 스무 살 때?! 처음 집 떠나 거제도에서 올라와서, 부모님의 감시하는 눈을 벗어났을 때, 모든 것이 자유로웠을 때죠. 술자리에 안 나가면 친구를 못 사귀었으니까. 새벽까지 마시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제 몸과 별로 안 맞아서 이젠 안 마셔요.
그럼 치킨 먹을 때 맥주 생각 안 나요? 콜라가 있으니까. 저는 펩시를 더 좋아해요.
자, 그럼 좋아하는 치킨 브랜드를 말해봅시다! 또 알아요? 광고 들어올지!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기분에 따라 달라요. 굽네 치킨의 오리지널, 비비큐의 윙즈. 윙즈는 날개만 오는 건데 매콤한게 생각날 때 시켜 먹어요. 또 교촌 간장 닭!
지금까지 찍은 광고 중 가장 잘 찍을 것 같은데요? 정말 잘할 자신 있는데!
치킨 광고 말고 '이건 정말 잘할 수 있다' 하는 분야 있어요? 김준현 선배님이 왕뚜껑 패러디 광고 찍었잖아요. 저도 패러디 광고라면 잘할 것 같아요. 제 캐릭터와 맞지 않을까요. 분야는, 고급스러운 광고를 따서 만드는 생활용품이 되겠죠?
닭 정말 좋아하면 치킨집을 하나 차리지 그래요? 내가 먹고 싶지, 튀기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친한 사람이 닭집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내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신보라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 노력이라는 건,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신애라, 차인표와 같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반대로 망가지는 연기는 어떨까요? 저는 망가져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 아무런 개연성 없이 망가지면 안 웃겨요. 지난번 '거제도' 하면서 느꼈어요. 네 달 만에 코너가 내려갔는데, 그때 작가님이 "보라야, 사람들은 네 망가진 모습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제가 멀쩡해야 터진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도 '개연성 있게 터져야 한다'는 고민은 있어요. 어떻게 망가져야 웃길까, 하는.
여자 달인 같은 건 어때요? 그건 김혜선 언니가 하면 될 것 같고… 저는 글쎄요. '거제도'에서 사투리 연기도 잠깐 했었고… 꽁트 계속해야죠.
10년, 20년… 미래 계획을 세우는 편인가요? 정말 불안했을 때 먼 미래를 생각하면 더 불안해요. 지금까지 온 것도 계획해서 온 게 없어요. 리허설할 때 열심히 하고, 코너 검사 받고, 무대에서 열심히 하고, 열심히 인터뷰 하고, 녹음할 때 열심히 하고…. 그게 앞길을 만들어준 것 같거든요.
무대에서 진지하게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이 진심이었군요. 무대에서 터졌나 안 터졌나보다는 몰입했나, 안 했나가 중요해요. 재미있게 짜는 것은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고, 덜 터져도 내가 무대에서 몰입해서 반응 신경 안 쓰고 연기했을 때의 만족감은…. 그날은 행복하게 잡니다.
롤모델이 있나요? 개그(일)와 인생을 구별해서 말씀드릴게요. 무대에서는 항상 기대감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데뷔 전부터 마니아였거든요. 제가 항상 기대하는 마음으로 봤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오늘은 뭐할까?' 하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고요. 그래서 모든 선배, 동기, 후배들이 롤모델이에요. 노력과 고민을 함께하며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또 멀리 봤을 때는 차인표 선배님이나 신애라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신보라'라는 사람이 매력이 있고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더 깨져야 하고 지금보다 여유가 있어야겠죠. 인생을 더 살아야 할 거고, 사람 보는 눈도 생겨야 할 것 같고요. 제 바람이에요.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2013년 9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